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발생한 항공기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잠기게 했다. 아직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한 채 애태우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계엄·탄핵정국으로 국가가 비상사태에 빠진 상황에서 2024년 마지막 주일 아침에 속보로 전해진 내용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태국 방콕에서 연말 휴가를 보내고 귀국하는 가족 단위 여행객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원인 모를 기체 결함으로 동체 착륙을 했고, 활주로를 벗어나 콘크리트 장벽에 부딪히며 폭발하는 바람에 181명 중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다.

해가 바뀌고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돼가고 있으나 유족들의 시간은 29일에 그대로 멈춰있다. 사고 희생자의 신원이 거의 확인됐지만 유가족은 여전히 희생자 시신을 인도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체 폭발로 시신의 훼손이 심해 수습이 어려운 데다, DNA 채취 등 신원 확인과 검안, 검시 등 법적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는 게 이유다.

시간이 지나고 사고 수습이 진행되면서 참사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해당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무엇인지, 새떼가 ‘랜딩기어’ 고장을 일으킨 것인지, 기체가 활주로를 벗어나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 즉 로컬라이저가 이번 참사를 키운 원인인지 등 규명해야 할 쟁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 세간엔 무안국제공항이 애초부터 공항 입지로 적합하지 않은 곳인데 과거 지역 국회의원이 표를 얻기 위해 정치 논리로 건설한 것이라는 설이 무성하다. 공항 주변이 조류 서식지 4곳 둘러싸여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데다 공항이 들어서기 전에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던 공항 이용객 수가 지난해 24만6000명에 불과한 점 등 태생적으로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어려운 여건이란 지적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문제도 논란거리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목한 사고의 원인이 ‘랜딩기어’ 고장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가능성으로 새떼 충돌을 꼽고 있다.

무안공항은 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이 조성된 곳에 국제공항을 건설했다는 자체가 이미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것이다. 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당시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는데 이건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국내외 항공 전문가들이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한결같이 지목한 것이 ‘둔덕형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이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공항에 착륙하도록 도와주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이 장치는 활주로 끝에서 최소 300m밖에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 끝에서 264m밖에 안 되는 지점에 있는 데다 2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동체 착륙한 비행기가 이곳에 충돌하며 폭발하는 바람에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런 위험한 위치에 ‘둔덕형 로컬라이저’를 세운 공항이 무안공항 하나가 아니란 점이다. 무안공항에서 멀지 않은 광주공항과 여수공항, 청주공항도 이와 비슷한 콘크리트 둔덕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해 당장 위치와 설계 변경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에 ‘무안’이란 지명을 빼고 ‘제주항공 사고’ 또는 ‘항공기 참사’로 명칭을 바꾸려 하는 시도가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무안’이라는 지역에 대한 혐오감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인데 좀처럼 납득이 안 되는 설명이다.

본래 그 어떤 사고든 발생한 지역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정석이다. 대구 지하철 사고,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도 참사 등 모두 사고가 일어난 지역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 지역 이름이 붙었다고 해당 지역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야권에서 ‘무안’이란 지역명이 거론되는 걸 극히 꺼리는 분위기다.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공항 입지의 적합성 논란이 불거지는 과정에 특히 민주당은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공항이 들어설 수 없는 지역에 무리하게 공항을 유치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심성 공약에 대한 비난 여론과 책임론이 비등하자 이제 와서 쉬쉬하며 덮으려 한다고 진실까지 덮어지겠는가. 차제에 정치 논리로 만든 공항들에 대한 전면 재점검도 이뤄져야 한다.

계엄·탄핵정국으로 혼란이 극심한 때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건 참으로 안타깝고 황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런 참사마저도 정치적 이해득실로 연결하는 부끄러운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특검을 들고 나왔을 야당이 입을 굳게 다물고 연일 ‘애도’ ‘추모’를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애도는 국민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정치권이 개입해 이래라저래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번 참사는 조류 충돌에서 시작된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희생과 피해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막을 수도 있었는데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예고된 인재(人災)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원인 규명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79명의 국민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다면 희생된 분들을 욕되게 하고 유족의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만약 국정 공백사태를 핑계로 한두 사람에게 책임을 씌우고 흐지부지 조사를 마무리한다면 항공 안전에 대한 불신과 함께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란 국민적 불안감이 조성될 것이다.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는 대로 철저하고 신속한 원인 규명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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