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전도 방법이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을 통해 누구를 전도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만약 전도가 무엇인지,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도가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다면 과연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내가 받은 구원이 크고 놀라운 은혜라고 한다면 이 은혜에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구원은 받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더 받아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한 탐심으로 가득 찬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처음도 끝도 영혼이요, 영혼에 대한 사랑이요, 구원이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에 다른 무엇이 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구원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결을 같이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복된 소식이신 그분을 나누는 삶이다.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이것이 복음(gospel), 즉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다.
서민수 – 공진단 목사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인류 전체의 조상인지 의문을 품는다. 성경의 가르침이 과학적 증거와 일치할 수 있을까? 우리 문화는 성경의 성 윤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우리도 그럴 때가 있다. 우리는 성(性)은 두 개만 존재하고 따라서 남녀가 평생의 언약 안에서 연합하는 것만이 결혼의 유일한 정의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곤 한다. 자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옳은가? 그 가르침은 여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성을 억압하는 것인가? 인종 정의(racial justice)를 포함해서 정의에 관한 성경의 관점은 옳은가? 성경은 인류의 근본적인 연합과 영원한 다양성에 관해서 참된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 몸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가? 이런 의문과 반대 속에서 많은 회의주의자들은 성경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역사적으로 믿을 수 없으며, 문화적으로 퇴보적”이라고 믿는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의문에 공감할 수 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결국 받아들이기 힘들고 믿기 어려운 내용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필립 라이큰 – 의심을 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긴장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신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그분께 속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도 자책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또 당신이 쉽게 빠지는 유혹의 배후에 있는 깊은 욕구를 보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때로 우리는 유혹이 심층적 문제의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알고 이해하도록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며 또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톰 아이젠맨 -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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