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여전히 교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자 은성수 목사는 이러한 영향력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대부분 기독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소개되어왔으나, 복음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이들에게도 복음의 숲을 알게 하고자 한다. 따라서 비유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정황 속에 나타난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특징들을 통하여 비유를 연구하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공해주는 풍성한 지침서가 되기를 소망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초대 교회 때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하는 데 알레고리적 방법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에는 문법적 해석 방식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아돌프 율리허(Adolf Julicher), C. H. 도드(C. H. Dodd), 요하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그리고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 및 비유 해석을 통하여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비유 해석에 있어서는 복음서 기자들이 어떻게 해석을 하였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예수님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의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유를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누가복음 12장과 13장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해 말씀한다. 누가복음 13장 18-21절에 나타난 두 개의 비유는 앞부분의 결론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로 회개와 치유, 표적과 사단의 패배에 대하여 폭넓은 차원으로 그의 나라가 침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예수님의 말씀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한쌍을 이룬다. 남성을 나타내는 겨자씨 비유와 여성을 나타내는 누룩의 비유는 예수님의 초반부의 여행 기사의 끝을 맺는다. 누가복음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 31-33절과 마가복음 4장 30-32절과 병행을 이룬다. 마태복음의 두 비유는 ‘마치 사람이…와 같다’는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사용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로 사용한다. 마가복음의 겨자씨 비유는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수록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하데스에 있다고 말한다. 나사로는 안에 있고 부자는 밖에 있다. 이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에게 요청한다. 여기서 부자의 행동과 말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이 부자는 고통 속에서, 나사로와 아버지 아브라함을 알아보고 자기를 구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 부자가 고통을 느껴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나사로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지상에서 살 때, 가난한 사람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알 뿐 아니라 그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이 부자는 지상에서 가지고 있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는 나사로를 자기 집 문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죽음 후에도 회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그 마음이 얼마나 완악한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누가복음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의 독자들에게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누가-행전은 누가의 문학적인 작품이 아니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사랑을 전해준다. 그래서 그는 누가-행전을 기록한 목적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확실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눅1:4).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된 것이다. 누가는 자기의 삶의 정황을 통하여 만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라고 말하므로 누가-행전의 모든 기록이 자기의 작품이 아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증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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