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일보는 내년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기념해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글을 연재합니다.

3.2 한국의 선교적 사명 주장을 통해서 본 그의 글로벌 의식

류금주 박사
류금주 박사

언더우드는 한국 국민들의 종교 생활을 고찰한 결과 한국인들이 가진 깊은 종교적 본성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서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종교의 허구성과 거짓됨을 간파할 줄 알고, 종교적 본성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접하였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서 그분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몸소 행할 줄 아는 참으로 독특한 국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서 언더우드가 말하는바 한국인이 가진 깊은 종교적 본성은 기독교적 본성임을 알 수 있다. 언더우드가 지시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성적으로 간파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구와 거짓의 종교는 바로 한국인들의 종교로서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유교와 불교와 무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가진 기독교적 본성을 확인한 언더우드는 동북아시아에서 점하는 한국만의 고유한 신부적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한국을 통한 기독교 아시아와 기독교 세계 건설의 사명이었다.

나는 이 나라가 강하고 온유한 팔을 내밀어, 한편으로는 중국을 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을 보듬어서,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친 편견과 보수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신뢰를 유지함으로써 세 나라 사이에 세세 무궁하신 어린양의 영광을 찬양하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아름답고 멋진 기독교국가로서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가령 스미스와 같은 이는 「중국의 중흥」(Uplift of China)에서 중국 국민의 선교는 전 세계 정복의 전초기지 확보라는 말을 하던 때였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미구(未久)에 이루어질 한국의 복음화야말로 “중국을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도록 하는 사역을 가속화할 것”을 한국 선교 역사를 통해 확증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선교적 사명의 고유성에 대한 언더우드의 확신은 연역적인 것이 아니라 귀납적인 것이었다. 한국인의 고유한 기독교적 본성을 보니 이 고귀한 자산이 바로 그들의 사명일 터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상업 중심적인 중국이나 군사 중심적인 일본과는 또 다른 한국만의 고유한 사명이 되는 것은 바로 한국 국민에게만 유독 기독교적 본성이 신부의 기업으로 주어져 있다는 고찰이었다.

한국인은 중국인만큼 냉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만큼 변덕스럽지도 않다. 그들은 옹고집과 같은 무분별한 보수적 성향이나 변덕스럽다고 할 만큼 쉽게 순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냉정하게 비교 검토하여 만일 정말 좋은 것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앙과 전통을 경솔히 버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꺼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중국 사람들처럼 미신에 매여 있지 않으며, 그들의 옛 종교에 빠져 있지도 않고, 과거의 전통을 맹신하지도 않는다. 반면 일본 사람들처럼 무조건 모방하거나 따라하지도 않는다.

앞서 기술한 한국의 전방위적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언더우드의 서술은 한국이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와 동등하게 그 할거(割據)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적 본성에 근거한 한국의 선교적 사명 발굴은 글로벌 세계에서의 한국민의 독자적 공헌을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언더우드가 보기에 한국의 사명의 독자성은 다른 국가들의 사명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독자성이란 한국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자산이라는 의미요, 한국에게만 주어진 것이기에 어느 다른 국가도 대체할 수 없는 한국만의 공헌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를테면, 중국의 미래는 상업에, 일본의 미래는 군사에, 그러나 한국의 미래는 기독교에 달려있다는 말이었다. 즉 한국은 기독교로 이 세계에 공헌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의 신부적 사명으로서의 선교라는 언더우드의 주장은 그의 글로벌 의식의 또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글로벌 세계에서 전체를 통괄하는 가치는 있을 수 없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의 고유한 사명에 충실할 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 세계주의임을 언더우드는 이날 드높이 외치고 있었다.

4. 조선기독교대학 창설과정에 나타난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

4.1 교명(校名)의 특징

선교30주년기념강연 중인 언더우드(1914)
선교30주년기념강연 중인 언더우드(1914) ©연세대 제공

1915년 4월 12일 연세대학교의 전신(前身)인 조선기독교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이 언더우드에 의해 설립되었다. 세계 YMCA 운동의 지도자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존 모트(J. R. Mott, 穆德: 1868-1955)에 의하면, 조선기독교대학은,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 사역에서 그의 국가경영자다운(statesmanlike)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업적이요, 한국에서의 그의 혁혁한 선교사역들 전부와도 맞바꿀 수 있는, 언더우드 인생 최대의 성취였다.

수많은 건설적인 일들로 점철된 그의 생애 중 가장 국가경영자다운(statesmanlike) 성취 중 하나는 바로 연합기독교대학의 설립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이 일 외에 어떤 일도 성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그 자체로 보기 드문 귀한 성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친구들과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대학의 성공적인 발전을 위해 힘쓰는 것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기독교대학이라는 교명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조선(한국)-기독교(크리스챤)-대학(고등학문)이다. 한국의 고등학문 즉 대학은 기독교 신앙 위에 정립되어야 한다는 뜻이 이 교명에 담겨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고등 학문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근대 한국을 이끌고 갈 동량지재(棟梁之材)를 육성한다는 대학 이름의 구조에서, 정치와 사회와 종교라는 전방위적 분야에서의 한국 선교를 요청하던 언더우드의 염원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기독교 한국의 미래는 신앙과 사회의 유기적 연관 위에서 펼쳐져야 한다는 강조가 여기 뚜렷하다.

4.2 조선기독교대학 신과 창설에서 견지한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

1890년대의 언더우드
1890년대의 언더우드 ©연세대 제공

한편 언더우드는 연세대학교의 창립자인 동시에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초대 학장임이 최근 발간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백년사」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런데 언더우드가 조선기독교대학 신과(神科)를 설립하면서 품었던 신앙은 다음의 네 가지로 드러나고 있다.

첫째, 언더우드는 조선기독교대학이 한국 현지선교부가 세워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하는 한국 내의 모든 교육기관과 모든 대학의 갓돌, 곧 극치가 될 것을 소망했다. 따라서 연세신과는 연세대학교의 기독교 정신의 거점인 동시에 한국 내의 모든 기독교 대학의 기독교 정신의 표석(標石)으로 세워졌다. 그것이 연세신과가 담지(擔持)한 고유의 사명이었다.

연세신과에 대한 언더우드의 비전은 실증(實證)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해방 전 연희전문학교의 유일한 신과 졸업생 정성봉(鄭聖鳳)이 그 증거이다.

우선, 정성봉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끝에 6개월의 실형을 언도받았던 인물이었다. 「한국독립운동사」에 “연희전문학교 생도 예수교도 정성봉 당 22세 등”으로 시작되는 사건 기록은 연전 신과생 정성봉이 독립운동에서 대표격인 학생으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음, 정성봉은 1920년 창립총회를 가진 <조선학생대회>의 지육부장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연전신과는 연희전문학교의 덕육, 지육, 체육 중에서 덕육적 활동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덕육 활동의 심볼인 연전 신과생이 전국 조선학생대회의 지육부장이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은 당시 한국 학생들의 지성은 덕육 즉 기독교 신앙에 밑받침된 것이어야 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또, 정성봉은 연희전문학교 곧 연세대학교 최초의 학술지인 「연희」 창간호의 책임편집인이었다. 더구나, 정성봉은 1922년 당시 국내 7개 전문학교 학생들이 주최한 <전국전문학교 학생 강연대회>에서 연희전문학교를 대표하여 강연하였다. 그야말로 한국 기독교대학 교육의 갓돌이 연희전문학교 신과의 상징적인 위치에 서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언더우드는 기독교 신앙의 실체로서의 신과 교육을 꿈꾸었다. 일제 치하 엄중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기독인 교수들의 삶을 통해 학생들은 저절로 기독교 신앙을 배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직접적인 기독교 교육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점은 분명합니다. 총독부가 막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총독부는 학생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크리스챤 교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셋째, 언더우드는 교회가 사회 속에서 유기적으로 살아 생동하는 오가닉 기독교 신앙을 추구했다. 가령 서북의 평양 숭실대학은 세상에서 격리된 순수한 경건을 추구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종교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형극(荊棘)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이 현실 역사 안에 유기적으로 현존한다는 것을 시위하는 역사 참여의 강력한 연합기독교대학을 설립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모든 한국을 위한 교육 전체를 비기독교인의 손에 맡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원하면 이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지어 그런 종교적 훈련이 전혀 없더라도, 과학과 역사와 철학 등 교육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정직한 기독교인에 의해서 훈련받는 학생들을 가지고 싶고, 절대적으로 비기독교인이거나 많은 자들이 반기독교인인 교사들보다 기독교인의 삶을 사는 교사들에 의해 훈련받는 학생들을 가지고 싶습니다. …

총독이 우리에게 자신은 기독교 대학을 선호한다고 공포한 바로 그 사실, 그리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학을 위한 부지를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태도가 완전히 적대적이지 않음을 아주 분명하게 증명합니다. 한국교회의 입장은 그런 명백한 분리와 함께 우리 교육 체계의 정상에 최소한 하나의 강력한 연합기독교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때가 되면 일본 제국 전역에 적용될 자유로운 처우를 우리가 받게 될 것은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신앙이다. 연세신과 초대학장 언더우드는 기독교 세계주의의 광활하고 원대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기독교대학을 통하여 기독교 한국, 기독교 아시아, 기독교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실제로 언더우드는 한국과 미국과 일본, 한미일 기독자들과 손잡고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하였으며, 그리고 이 대학의 기독교 정신의 교두보(橋頭堡)로, 중추(中樞)로, 신과를 설치하였던 것이다.

언더우드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하게 보고 있었다. 기독교 대학을 선호한다는 총독의 말, 대학부지 허가에 대한 반대를 무릅쓴 총독과 총독부 관료들의 우호적 태도, 현지 관리이사회에 대표를 파송한 한국 현지선교부들의 동고(同苦)와 동행(同行),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본부의 조정과 중재와 감독, 임시 공간을 허락해 준 서울YMCA의 배려, 서울 시내 일본인 크리스챤들의 적극적 지지와 격려 그리고 그들의 교수와 이사 회원으로서의 봉사, 서울 소재의 뛰어난 한국인 강사들, 그리고 한국 전역에서 이 대학을 지원해 준 한국인 학생 61명, 그리고 이름이 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교회와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 등, 그 고마운 사람들, 그들은 분명 고난의 현실 한 복판에 함께 계신 하나님 역사 경륜의 뚜렷한 표식으로 언더우드에게 다가섰다.

“현재 상태의 선용”, 언더우드의 이 경세적 신앙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언더우드의 조선기독교대학만이 당당하게 그 엄중한 <개정 사립학교규칙>의 실제에서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는 사립 고등교육기관 즉 <사립 연희전문학교 기독교연합재단법인>으로 인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는 그 해 뒤늦게, 그리고 숭실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는 1925년에 가서야 전문학교로서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4. 결론

한국의 개척 선교사 언더우드는 그의 한국 선교 사역의 전개에서 뚜렷한 기독교 세계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복음 전도자로서 가지는 그의 선교 사명의 정체성은 하나님 역사 주재의 하나 된 기독교 세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1908년에 출간된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 보고서는 그의 글로벌 의식의 특징들을 드러낸다. 첫째,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세상의 한 부분으로서의 한국 이해이다. 이 경우 글로벌 세계는 각 지역의 총합으로서 나타난다. 둘째,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국민들의 종교생활보다 앞세운 것이다. 이는 신앙의 실체적 성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셋째, 일상생활과 종교생활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글로벌 세계의 유기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넷째, 한국의 신부적 사명으로서 한국의 선교 사명의 고유성을 강조한 것은 각자 사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것이 그대로 글로벌 세계주의로 성립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은 그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과 그 신과를 창설하면서 간직한 신앙에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 정치와 사회와 종교의 기독교적 구축의 염원이 조선기독교대학의 교명에 담겨 있다. 근대 한국의 기독교 신앙 교육의 극치로서의 신과 교육, 기독교 신앙의 실체성, 교회와 사회의 유기적 연결, 글로벌 신앙은 그의 선교 보고서에 나타난 기독교 세계의식과 다르지 않다.

한국과 한국교회를 기독교 선교와 그 세계의식에서 창설, 구축해간 한국의 개척 선교사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과 한국교회의 시대적 방향 조정과 사명 확립에 하나의 빛을 밝혀줄 것이다. <끝>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류금주 #류금주교수 #류금주원장 #언더우드 #한국선교14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