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일보는 내년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기념해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글을 연재합니다.

1. 글로벌 시대와 기독교 세계의식

류금주 박사
류금주 박사

기독교는 세계성이 그 특징이다. 현존하는 세계의 고등종교 –유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기독교 등- 중에서 지역과 민족과 문화권 등의 제한에 가장 구애받지 않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세계성은 기독교의 세계 선교를 통해서 확보되고 실증되어 왔다. 선교(宣敎)를 통해서 세계 만민은 언어와 종족, 전통과 경제적 이익의 모든 국수주의적 장벽과 차별을 넘어서게 된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역사 주재를 인정하는 하나님 나라 확장의 통로이다.

한편 기독교의 세계의식은 세계 경제 질서의 단일화라는 글로벌 시대를 맞은 현대 세계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독특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눈앞에는 기독교가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하나 된 세계,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글로벌 세상이 객관적 실제로서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글로벌 세계의 그 객관적 실제만큼이나 온 세계의 사람들을 하나의 세계의식으로 연합하게 하는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모든 차별을 넘어서서 한 분 주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하나 된 세계를 꿈꾸는, 즉 세계의식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가 글로벌 시대에 가지는 사명의식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온 인류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그 날을 꿈꾸며 그 길로 매진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크리스챤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2. 언더우드 한국 선교의 시대적 맥락과 그의 글로벌 의식

이 논문은 한국의 개척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元杜尤, 1859-1916)가 그의 한국 선교 사역의 전개에서 간직했던 글로벌 의식을 논구(論究)하려는 것이다.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는 1882년 한미 수호조약 이후에 착수되었다. 한미 수호조약은 한국이 처음으로 서양의 기독교 문명국가와 맺은 평등한 조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은 동양의 주변 국가,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강화도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겪은 잦은 침탈과 그로 인한 불평등한 대외관계에서 시달려오던 터라 이러한 한미수호조약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선교30주년기념강연 중인 언더우드, 1914
선교30주년기념강연 중인 언더우드(1914) ©연세대

한국에 있어서 세계 만민의 하나 됨,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 주재와 섭리를 가르쳐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기독교 선교사였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가 한국에 가져다 준 수많은 보화를, 언더우드가 창립한 연세대학교 창설 백주년을 이태 앞둔 1983년, 연세대학교는 다음과 같이 밝힌 일이 있다.

한국의 개척 선교사 호레이스 G.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한국은 수 백 년 동안 머물렀던 “은둔의 왕국”으로부터 막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날 도착한 언더우드는 그가 57세의 나이로 급서(急逝)하기까지 서울을 거점으로 하여 한국에 상주했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요 교육자요 저술가요 번역가요 사회사업가요 조직가였습니다. 그는 왕실과 친밀했으며 서민과도 친근했습니다. 그의 광활한 비전, 역동적인 성품, 지칠 줄 모르는 수고는 한국 교회의 초석을 놓았을 뿐 아니라 연세대학교, Y. M. C. A., 성서공회, 예수교서회와 같은 기관을 창설했던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중요한 인물의 전기로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은 한국 역사에서 중차대한 온전한 한 시대의 전기입니다. 인쇄된 지 오래인 이 책을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여기 다시 펴냅니다.

언더우드 서거 후 2년 뒤에 출판된 그의 영문 전기 「한국의 언더우드(Underwood of Korea)」를 다시 발간(發刊)하면서 붙인 말이다.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는 “한국 역사에서 중차대한 온전한 한 시대의 전기”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언더우드 한국 선교 백년 어간의 연세대학교의 증언이었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그의 한국 선교 사역 전개에서 뚜렷하게 기독교 세계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가 객관적 실제로 펼쳐지기 이미 백여 년 전의 일이어서 그의 시대인식의 선구적 성격이 돋보인다.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에 나타난 글로벌 의식, 그 연원과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기독교 선교사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들 수 있다. 선교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독교의 세계의식을 전제하고서야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더우드는 내한 선교사이자 복음 전도자로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예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을 평생 간직하여 수행해 갔다.

다음으로 언더우드는 한국과 한국인을 하나 된 기독교 세계의 일부로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이 남달리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심성이야말로 한국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고유한 사명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설파해 나갔다. 이러한 언더우드의 한국 이해와 거기 나타난 글로벌 의식은 1908년에 펴낸 그의 한국 선교 보고서 「와서 우릴 도우라(The Call of Korea)」에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1915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을 울에 창설하는 과정에서 간직한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이다. <개정 사립학교규칙> 발포의 반(反)기독교적 상황에서 추진했던 기독교연합대학 창설의 난제, 대학 소재지를 둘러싼 미국 북장로교 한국 현지 선교부의 격심한 반대, 이 모든 것을 뚫고 나가도록 한 것은 언더우드가 간직한 글로벌 의식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논문은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에 나타난 글로벌 의식을 다루되 특히 1908년의 그의 선교 보고서와 1915년 조선기독교대학 설립 과정에 한정하여 그의 글로벌 의식의 특징을 살피려는 것이다. 근대 한국의 기독교적 지향이라는 골조(骨組)를 구형(構形)한 한국의 개척 선교사 언더우드의 글로벌 의식 연구는 세계 단일 경제권으로서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과 한국교회가 그 시대 인식의 향방을 조정하고 시대적 사명을 자각, 확립하는 데에 적게나마 일조(一助)하리라고 본다.

3.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 보고서에 나타난 글로벌 의식

3.1 그 제목과 목차 구성의 특징

1890년대의 언더우드
1890년대의 언더우드 ©연세대

1907년 초여름부터 1909년 늦여름까지 언더우드는 미국의 크리스챤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부름을 설파(說破)하고 있었다. 그의 호소는 23년 동안의 그의 한국 선교 경험에 근거한 것이어서 더할 나위 없는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1908년 한국 선전단의 단장으로서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강의하던 언더우드는 같은 해에 그의 선교 보고서 「와서 우릴 도우라(The Call of Korea)」를 출간했다.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측면에서 한국이 부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선교 보고서의 부제였다.

「와서 우릴 도우라」 -정치적으로-사회적으로-종교적으로
The Call of Korea -Political-Social-Religious-

미국과 전 세계의 크리스챤들을 향한 한국의 선교 호소는 단지 종교적 측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언더우드의 선교 보고서 제목의 특징이다. 오히려 종교적 호소는 맨 마지막에 제시된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호소가 종교적 호소보다 단연 앞선다. 한국에 수행되어야 할 기독교 선교는 정치와 사회와 종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방위(全方位)에서 기독교적으로 거듭난 근대 한국을 언더우드는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나라, 즉 정치적, 지적, 영적으로 무질서와 무지와 미신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나라, 기독교 한국이 내 눈 앞에 똑똑히 보이는 것만 같다.

전방위적 선교로 세워지는 기독교 한국을 향한 그의 소망은 이 선교 보고서의 목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제목과 같이 정치, 사회, 종교의 순서 나열이 특징적이다.

제1장 국토
제2장 국민들의 일상생활
제3장 국민들의 종교생활
제4장 선교사역의 형태와 방법
제5장 한국 선교의 어제와 오늘
제6장 각 교파들의 사역

여기서 국토는 한국 선교의 정치적 측면을 위해,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한국 선교의 사회적 측면을 위해, 국민들의 종교생활은 한국 선교의 종교적 측면을 위해 기술되고 있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언더우드의 선교 보고서는 그 목차에서 볼 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전반은 1-3장으로서 선교지로서의 한국의 정황을 전방위적으로 살핀 것이다. 한국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서술이 그 특징이다. 후반은 4-6장으로 한국의 개척 선교사 언더우드가 한국 선교의 시원부터 걷되 그만의 구분된 신부적(神賦的) 사명의식으로 겪어간 23년 한국 선교 역사의 전 여정을 분석하여 실은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선교 보고서이자 한국 선교 전체의 보고서이다. 한국 선교에 있어서 그만한 역사적 사명이 바로 언더우드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한편 언더우드 선교 보고서의 흐름 즉 한국의 정치와 사회와 종교의 객관적 서술에서 시작하여 한국 선교 사역의 제반 보고로 옮겨간 모습은 그의 기독교 세계의식의 한 특징을 제시해준다. 한국 전반에 대한 객관적 서술은 한국을 하나님의 역사 주재 아래 있는 글로벌 세계의 한 지역으로 인정하는 그의 기독교 세계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한국 국토에 대한 그의 설명의 항목들을 살피면 명확해진다.

제1장 국토

위치/ 면적/ 인구/ 질병과 사망률/ 산(山)/ 하천(강)/ 조류(潮流)/ 토지의 비옥도/ 무역(수출과 수입)/ 기후와 위도/ 강우량/ 경관/ 농사/ 감/ 광물/ 금/ 인삼/ 정부/ 기독교 선교에 대한 정부의 태도/ 인구 분포

미국과 일본과 중국이 그러하듯이 한국 역시 그 고유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고유성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는 글로벌 세계의 모습이 여기 보인다. 글로벌 세계는 각 지역의 총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언더우드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국민들의 종교생활보다 먼저 기술한 점은 기독교 선교의 넓이와 깊이가 어디까지여야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생활은 무의식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습관적 행동으로 점철되는 것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의지적이고 자각적인 종교생활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폭과 심도는 광활하고 원대하다. 한국 국민의 일상생활의 기독교화, 굳이 기독교 정신을 자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 생활하는 기독교 한국을 언더우드는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제2장 국민들의 일상생활

첫인상/ 신장/ 중국인, 일본인과 한국인의 비교/ 최초의 부교(浮橋)/ 세계 최초의 철갑선/ 노동자들의 체력/ 지적 능력/ 소박함/ 여자들의 외출 금지/ 기독교에 의한 변화/ 가옥/ 의복/ 성인남자/ 머리카락/ 가마꾼/ 농부/ 상복(喪服)/ 관복(官服)/ 여성 고위신분과 하위신분/ 공예와 산업/ 예술/ 회화/ 자수/ 언어/ 교육/ 가정생활/ 어린 시절/ 결혼/ 새해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서술하는 여러 항목 중 ‘기독교에 의한 변화’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기독교만이 한 번 태어난(once-born) 삶이 아니라 거듭난(twice-born) 삶을 제공한다고 본 것인데, 이 거듭난 삶의 변화를 종교생활에서 서술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서술한 것이 언더우드의 사상의 독특함이다. 종교적 신앙은 일상의 삶에서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나는 “사랑”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사실 나는 김 선생이 개과천선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바뀌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사랑채에는 기름종이가 깔려 있지 않았으며, 흙바닥 위에 다만 멍석이 하나 깔려 있을 뿐이었다. … 우리가 안뜰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여자들의 방에 있는 커다란 창문이었다. 그 창문은 폭이 1.2m에 높이는 90㎝이었으며,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나는 김 선생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 그래요. 여자들은 바느질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채광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지요.” 남자가 여자를 배려할 줄 알게 되다니!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언더우드의 강조는 그의 글로벌 의식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즉 글로벌 세계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어디를 보든지 전체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상생활과 종교생활은 서로 구분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일상생활을 통해서 종교생활을 알 수 있으며 그 역도 역시 성립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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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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