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4대 교부로 꼽히며, 중세철학사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 중 하나이자 성인으로 존경받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대 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노력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신학적 사상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한번은 거쳐야 할 생각이고, 또 대다수의 넓은 공감을 불러왔다.
저자 이양호 총장(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신학교 총장)은 이 책에서 간략한 문장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핵심 사상을 시기별로, 주제별로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정리했다. 또한, 그가 어떠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삼위일체론을 완성했는지 그리고 기독교 신학과 인간론과 교회론 모두를 아우르면서 어떻게 독자를 납득시켰는지 알게 해준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 시기에 그는 마니교를 접하게 되었다. 마니교는 이원론적 사상이었다. 마니교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빛과 어둠이라는 두 원리는 동등하게 영원히 존재하며 상호 적대적이다. 빛의 원리는 선이고 어둠의 원리는 악이다. 인간은 영과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의 싸움터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서 자기가 찾던 것을 발견하였다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의 권위에 근거한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합리성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또한 거기에는 구약에 대한 배격, 악의 유래에 관한 그럴듯한 대답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마니교에는 두 부류의 신자가 있었다. 한 부류는 청취자(auditores)이고 다른 더 높은 부류는 선택자(electi)였다. 마니교에서는 선택자에게는 윤리와 금욕주의의 매우 높은 단계를 요구했지만, 청취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아우구스티누스는 399년경에 「삼위일체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제12권까지 집필하고 일단 집필을 중단했다. 그 후 누군가 이 완성되지 않은 책을 출판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를 당황하게 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삼위일체론이 오해되지 않도록 나머지 부분을 추가하여 15권으로 된 「삼위일체론」을 최종적으로 출판했다. 제15권을 읽어 보면 왜 아우구스티누스가 조기의 출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제14권까지 설명한 삼위일체의 흔적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역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역기능을 설명하지 않고 출판한 책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삼위일체론」의 한 부분에서 발췌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를 기억, 이해, 의지가 셋이면서 한 정신을 이루는 것으로, 단일신론적으로 설명했다고 주장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크게 잘못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에 그리스 신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이었던 견해, 즉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선행을 산출하는 영적인 결합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생물학적 산출은 타락 후에 비로소 알려졌다고 보는 견해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적 삶에서 진보하자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 아담이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은 그가 아들들을 낳은 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후기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담은 음식과 음료와 생식이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들의 숫자가 찬 후 예정된 때에 이 육체적 활동은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자기 자손들과 함께 영원하고 영적인 삶으로 변환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도나투스파에서는 교회를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는 동시에 성례는 거룩한 사람들이 베풀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배교자로 오염된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자기들 교회에서 재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의 효과가 집례자에 따라 좌우된다는 도나투스파의 주장, 이른바 인효론(ex opere operantis)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복음의 말씀에 의해 성별된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 집례자가 아무리 타락하고 부정하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거룩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적 거룩함이 오염될 수 없으며 신적 탁월성이 그 성례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살인자가 세례를 준다 하더라도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인간이 세례를 줄 때에도 성령을 주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