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지난달 24일 정기실행위원회에서 채택한 ‘NCCK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지침 문서’가 때아닌 ‘종교 다원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이 문서의 여러 부분에 종교 다원주의적 정신과 요소가 가미돼 있다는 지적이 일어서다.
이 문서는 NCCK 종교간대화위원회가 다른 종단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배려할 필요성을 느껴 작성한 일종의 안내서 성격이다. 위원회가 국내엔 마땅한 참고 자료가 없어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종교 간 대화 가이드 라인’을 참조해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문서가 나온 후 상당 부분에 ‘종교 다원주의’ 정신과 요소가 들어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인류 모든 생명을 위한 새 하늘 새 땅의 종말론적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는 제한이 없음을 믿고 고백한다”고 한 데 이어 “성과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차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한 자녀로서 모두가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종교인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웃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라고 한 부분이다.
우선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제한이 없다는 언급은 보편적 구원관점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종교와 문화의 차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한 자녀로서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고 한 건 분명 논란의 소지가 있다. 다른 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범주 안에 포함해 모두 평등하다고 한 건데 이는 어느 종교든 구원의 길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교 다원주의 측면이 아닌 선교학 용어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자칫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와 정신에서 이탈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학자도 있다.
‘NCCK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지침 문서’는 작성의 원칙과 목적에 대해 “다양성 속의 일치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다양성 속의 일치란 이웃 종교의 진리와 구원하는 힘에 대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다양한 신학적 관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위원회도 “더 넓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종교인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고,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치된 태도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타 종교인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와 기독교의 구원관을 허물어뜨리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순 없기 때문이다.
문서는 또 “그러므로 이웃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며 종교 다원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증언은 자기 공동체의 명성 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건 절대적 복음의 진리성을 따르는 대신 다른 종교의 진리와 가치를 인정하며, 종교적 믿음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종교 다원주의적 태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NCCK 종교간대화위원회는 이 문서를 작성하면서 “이 세상을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 종교인에게서 배우면서 영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깊어진다. 이웃 종교인과의 대화를 통해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된다” 등의 내용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이런 언급은 결국 교회가 추구하는 선교의 방향이 복음 전도가 아닌 모든 타 종교인과 평화롭게 지내는 공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 문서가 논란이 되자 선교를 예수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와의 구분에서 출발하자는 것이 아닌, 모든 자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 관점에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즉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WCC가 추구하는 종교 간 대화의 목표는 종교 간의 존중과 평화 공존에 강조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으니 기독교를 비롯해 다른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고 종교 간 대화를 통해서 더욱 온전한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문제다.
복음적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 간 대화 역시 전도를 위한 통로이자 도구일 뿐이다. 복음을 증거할 목적이 아니라면 종교간 대화란 그럴듯한 격식을 차렸을 뿐 결국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십자가와 부활이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것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 1~11)고 하셨을 뿐이다.
NCCK 실행위가 채택한 종교간대화위원회 문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하신 말씀에 비쳐 볼 때 한국교회가 가는 복음적 방향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 거듭된 ‘차별금지법’ 논란으로 인권위원회 앞에 붙은 NCCK 간판을 떼어낸 NCCK 향후 행보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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