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특수부대 등 4 여단 총 1만2000여 병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군 1진 1500여 명이 이미 러시아로 이동해 전선에 배치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군의 외국 파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베트남전과 중동전에 전투기 조종사 등 소규모 병력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1만2천여 명이나 되는 지상군 병력을 외국 전쟁에 파병한 건 예삿일로 볼 수 없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와 포탄 등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교도소 수감자들까지 전선에 내몰고도 갈수록 전세가 불리해지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파병을 요청했고 김정은이 이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게 사실로 밝혀지면서 지난 6월 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은과 가진 북-러회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당시 두 정상 간에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포함된 ‘유사시 군사 개입’ 조항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입증된 셈이다.

문제는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한반도 유사시에 러시아가 자동적으로 군사 개입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병력 파병뿐 아니라 러시아가 보유한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경우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직접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가 또다시 위협받게 됐다.

북한 김정은이 대규모 병력을 러시아 전선에 투입해 얻고자 하는 속셈이 있을 것이다. 북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의 나라 전쟁에 군대를 보내 희생자가 많이 나올 경우 그 원성과 지탄이 김정은 정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 건 아무래도 도탄에 빠진 경제에 숨통을 틔우려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김정일 때부터 회생 불가한 파탄 상태라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지난 여름 엄청난 수해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로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유엔 제재로 주변국들과의 무역이 차단되면서 외화 수입마저 끊긴 상태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지도부는 북한군이 러시아전에 투입돼 러시아로부터 받을 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돈줄이 막힌 북한 지도부로선 북한군을 러시아 전선에 투입하는 것을 일종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북한이 바라는 또 하나의 노림수는 북한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우고 현대화된 러시아의 첨단 무기 기술을 지원받으려는 데 있다. 북한 군인은 최소 5년부터 최대 13년까지 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긴 복무기간에도 실제 전투를 해본 경험이 없다는 게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북한으로선 이런 전투 경험 부족을 러시아 전장에서 채워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전투 경험이 없는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바라는 전과를 올리기는커녕 엄청난 희생자만 초래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쟁터에 투입된 대부분의 러시아 군인이 징집병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전쟁 수행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2022년 개전 이후 죽거나 다친 러시아 병사만 70만 명에 이를 정도다. 북한군은 복무기간만 길었지 전투 경험이 없는 데다 러시아군보다 무기·장비도 열악하고, 결정적으로 왜 싸워야 하는지 명분도 없다. 이런 전쟁에 목숨 걸고 싸우려 할지 의문이다.

결국 북한 지도부가 북한군을 러시아 전선에 ‘총알받이’로 내 보내고 얻으려는 게 돈과 핵무기 관련 기술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권력층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전쟁의 양상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한 서방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되면 북한으로선 기대한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클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 국방부 장관은 최근 국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격전지에 배치된 북한군 사상자가 90%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병한 북한군 상당수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채 돌아오게 되면 악화된 민심을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북한군이 투항하거나 탈영해 망명하는 일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 MZ 세대는 남한 드라마와 가요를 자주 접해 김정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최근 대남 방송과 대북 전단지 살포에 불만을 드러내며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무인기’로 대남 적개심 고취에 나선 것도 젊은 군인을 외국 전쟁터에 보내는 데 따른 민심 동요를 덮으려는 속셈일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가운데 여야가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모처럼 한목소리로 규탄한 건 다행스럽다. 조속히 국회 차원의 규탄 결의안을 내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장에 미리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난 전쟁엔 대부분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이유와 명분이 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이유와 명분을 굳이 찾자면 ‘탐욕’이다. 이런 소모전에 북한이 뒤늦게 뛰어든 것도 독재체제를 철옹성처럼 굳건히 쌓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탐욕’이 김부자 체재의 수명을 더 단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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