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교회가 좋았다. 예배 시간에 어른들이 진지하게 노래 부를 때, 나는 형님과 가사를 바꿔 가며 불렀고, 목사님이 온 힘을 다해 설교하실 때, 나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옆에 앉은 친구들과 장난을 쳤다.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자주 혼이 났지만, 그래도 나는 교회가 좋았다. 내 기억에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부 형, 누나들을 따라 수련회에 갔던 것 같다. 수련회에 따라간 이유는 단 한 가지, 분위기가 좋아서였다. 중고등부 수련회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형, 누나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그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권사님들이 수련회에 따라오셔서 해 주신 밥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먹거리, 웃음거리가 넘치는 청소년부 수련회는 나의 방학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였다.그러던 내가 청소년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 웃음 가득했던 형, 누나들의 수련회는 눈물범벅의 수련회로 변했다. 세상을 마냥 밝게만 봐 왔던 내 눈에 깨어진 우리 가정이 포착되었고, 힘들어서 아파하던 친구들의 신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청소년 시기를 지나며 비로소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김종원 –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 중심지로 택한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리는 지역이었으며,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다. 마 4:15-16 이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의 하나님 복음의 첫 수혜자였으며, 제자들도 갈릴리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제 이 “갈릴리 사람들”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사도가 되고, 예수의 증인이 된 것이다. 갈릴리는 세계로 확산될 하나님 나라의 발상지가 된다. 스데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은 사람 손으로 지은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따라 이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성전에서 이뤄지는 제사활동 안에 축소시키고 감금시키려고 시도했다. 스데반은 이런 성전 고착적인 유대교 신앙에 맞서 하나님의 자유와 신앙공동체 동행을 강조했다. 스데반의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천하 만민에게로 들어가 종횡무진으로 통치하실 하나님이시다.
김회권 –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도행전
“예수를 믿으면 무슨 죄를 짓든 천국은 간다”거나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지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은 다 극단적이어서 불편하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둘 다 잘못이라 하신다. 행함 있는 믿음은 진실한 신자는 마땅히 이 둘 다를 불편하게 여겨야 한다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주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이 땅에서 중도에 잃는 경우는 없다. 신자가 죽을 때 비로소 각자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룬 구원의 승패가 갈린다. 순종도 아무 때나 못하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동안만 가능하다.
안환균 – 거저 받은 구원인가, 이루는 구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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