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기도운동의 대표이자 본 도서의 저자 이용희 교수는 지난 2015년 8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총 33회에 걸쳐 국민일보에 ‘역경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간증문을 기고했으며 이 간증글에 대한 여러 차례 출판 제의가 있었지만 선뜻 출판하지 못하다가 미국 필라델피아의 제1차 한국독립대회를 다룬 <1919 필라델피아> 음악극에 동역했던 많은 사람을 초청하면서 이 글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용희 교수의 삶과 생애,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에스더기도운동 본부를 이끌게 된 이야기 등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1958년 12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은행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결혼 전부터 예수님을 믿었으며 2010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평생을 새벽기도자로 사셨다. 반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셨다”며 “결혼 초 아버지는 억지로 교회에 다니셨다. 어머니는 주일마다 아버지에게 교회 출석을 재촉하느라 무척 힘들어하셨다. 그런데 1979년 아버지가 장로가 되신 후에는 상황이 역전됐다. 아버지는 집사 때까지도 술, 담배를 하셨다. 한 번은 장로고시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는지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용희야, 가서 담배 좀 사오너라. 교회 시험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아버지가 장로 임직을 받은 후부터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담배를 완전히 끊으셨다”고 했다.
이어 “1960년대 중반, 교회의 주일학교는 오전 9시에 주일예배를 드렸고 점심식사 후 오후 3시쯤 어린이들을 위한 오후 집회를 열었다. 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서울 신촌 대현교회에 출석했다. 오전 주일학교 예배와 달리 오후 집회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후에도 나를 꼭 교회로 보내셨다. 주일 오후 만화도 못 보고 억지로 교회에 나가는 게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억울했다”며 “가족 중에 주일성수 문제로 어머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파서 학교에 결석하고 직장을 결근하더라도 주일예배는 빠진 적이 없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신앙교육의 열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릴 때 살던 집에 우물이 있었는데 두레박질을 하다가 그만 줄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해도 두레박을 건질 방법이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어머니가 지나가가 보시고 우리 앞에서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 저 두레박을 건져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는 끈에 묶인 갈고리를 내리셨는데 한 번에 두레박을 건져내셨다. 조금 전까지 아무리 해도 안 나오던 두레박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분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이런 어머니의 기도 응답이 내 기억에 수두록하다”고 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아버지는 장로셨고 큰 형도 훗날 같은 교회 장로가 됐다. 그런데 교회 문제로 의견이 엇갈리면 어머니는 남편이나 아들 편을 들지 않고 담임목사님을 지지하셨다. 어머니는 늘 ‘목회자의 결정이 성경에 명백히 어긋나지 않는 한 권위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통해 영적 지도자에 대한 순종, 존중의 태도를 배웠다. 하지만 가정사에 있어서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어머니는 자신이 하지 않고 아버지가 결정하시도록 배려하셨다. 그래서 우리 5남매는 ‘남편에 대한 복종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반드시 기도를 하셨고 결정은 아버지가 하시도록 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권위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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