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전체에서 흐르는 ‘하나님 나라’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교와 직결

선교에 동참하고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지상교회와 성도의 당연한 존재 이유

김영휘 목사/선교사
김영휘 목사/선교사

머리말

본 글은 교리적, 학문적 내용이 아니고 신앙과 선교에 관한 글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선교적 열정이 식어져서 교회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점점 잃어가는 듯해 보이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향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강력하게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묵상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을 보는 관점은 일례로 구속사적, 언약적, 종족적, 연대기적, 성경 인물적 관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관점으로만 본다면 편향적이 되어 성경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균형적인 시각을 놓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하나님의 온전한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이를 통해 그분의 섭리와 깊은 뜻을 발견하여 올바른 신앙과 삶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좋을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해 왔다. 더욱이 왠지 모르게 대부분 교회의 강단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와 가르침이 사라지고, 다만 복음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증거로 개인 구원과 양육의 강조와 또한 축복과 위로와 윤리적 교훈에 관한 메시지와 가르침의 반복만이 전부인 듯 보여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신구약 성경 메시지의 중심이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신구약 전체에서 흐르는 이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교와 직결되며, 이에 동참하고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지상교회와 성도의 당연한 존재 이유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현실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실천하는 노력이 교회와 성도들의 궁극적인 신앙의 목적이며 비전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목적과 비전에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의 거의 모든 장마다 선교적 시각에서 통전적으로 볼 마음이 들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열정과 헌신을 구현하기 위해 섬기는 교회나 선교단체나 혹은 개인과 소그룹에서 이 글이 함께 공유되기를 기도한다.

특별히 우리나라에 250만 명이라는 이주민들이 들어와 있고, 또한 더 많이 계속 유입됨으로 선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이때 그들을 향해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의 시각과 비전이 세워져 가는 근거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성경: 창세기 3장 15절 제목: ‘구원의 놀라운 드라마’

오늘 묵상할 부분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인데, 그 중심은 창세기 3장 15절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놀라운 드라마’이다. 다시 말한다면 성경은 ‘선교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 말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구원과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움에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선교는 신약에서 시작된다고 하면서 주로 마태복음 28장에서 주님의 대위임령이나 사도행전 1장 8절에서의 증인의 사명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선교의 주제나 내용은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신약 전체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의 파노라마’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처음으로 선교 명령을 찾는다면 창세기 12장 3절에 나오는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 수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3절)는 구절로, 여기에 나오는 아브람이야말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최초의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묵상해야 할 말씀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인데,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의 부분으로, 이를 요약한다면 이 땅에 모든 나라와 민족과 땅의 경계가 하나님에 의해 조성되었고, 동시에 인류의 구원 계획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아브라함의 뿌리와 그의 배경에 대한 내용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부터 11장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인간은 다음 세 가지 위기와 세 가지 축복(다른 말로 언약)을 받는 장면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첫 번째로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와 축복은 선악과에 대한 불복종과 이에 따른 타락과 오늘 본문인 창세기 3장 15절에서의 ‘여자의 후손’으로부터 비롯된 축복이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뱀, 곧 사탄의 머리를 향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 인간의 죄로 인한 모든 문제들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약속의 근거가 되게 하셨다.

두 번째 위기는 홍수와 함께 찾아온 위기이다(창 7장, 8장, 9장). 홍수는 땅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멸망시켰고, 오직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그의 아내와 세 아들 곧 셈, 함, 야벳, 그리고 그의 세 며느리만 살아남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셈과 그의 후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홍수 심판을 내리셨지만, 노아와 셈의 후손들에게 다시 번성케 하시는 축복과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9장 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이다.

세 번째 찾아온 위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번영을 위해 온 세상에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바벨탑’의 이야기이다(창 11장). 그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적인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께 대한 저항과 불신앙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서로 소통을 못 하도록 하여 그들을 온 세상으로 흩으셨던 것이다.

그렇게 흩어진 민족의 이름들이 이후에 나오는 70개 종족의 이름인데, 이는 예수님이 파송하신 70인 전도대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70이라는 수는 세계 열국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따라서 예수님이 70인 전도대를 파송하신 것은 단순한 전도대의 파송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선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교만에 대한 단순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흩어진 인간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함을 보여준 선교적 예시인 것이다.

또 한편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히브리 셈족의 조상을 택하시고 그에게 언약을 주신 것(창 12장)으로 결국 그의 자손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분은 여인의 후손, 셈의 장막에 거할 자, 곧 하나님의 약속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인간의 타락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축복’과 ‘언약’으로 당신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심으로 장엄하고 놀라운 구원의 드라마를 펼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계속하여 창세기 12장 이후에 나타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게 될 터인데, 그로 말미암아 앞으로 성경 전체를 선교적 시각으로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장엄한 구원의 드라마를 일관되게 만나게 될 것이다.

[말씀묵상기도]

1.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게 하소서.

2. 영적 이스라엘의 후손인 저희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축복과 언약을 이어받는 자가 되므로 말미암아 열방을 향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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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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