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
최창국 교수 ©유튜브 영상 캡처

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29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교회 공동체를 위한 형상 신학’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성화와 성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예수님의 초상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대상으로 전락시켜 비렸다며 비판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교부의 말을 통해 성화와 성상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며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놓은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술품이 사탄의 영가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당시 예술 활동이 주로 이방 종교와 관련되어 나온 사실 때문에 생긴 것이다. 교부 시대 이후에도 츠빙글리는 그림, 조각, 벽화 같은 시각 예술을 모두 교회에서 제거해 버렸다. 일부 청교도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이어 “형상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십계명의 형상 금지 조항에 대한 오역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며 “특히 십계명의 형상 금지 조항,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출 20:4)의 내용을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상도 금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조각상과 같은 예술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계명은 본래 일반적 의미에서 예술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제의 신상 경배와 관련이 있다. 또한 이 계명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었다”며 “따라서 십계명의 형상 금지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형상 금지를 통해 신성불가침을 보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계명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금지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도 물질을 통한 형상 표현의 전통에서 연유한 것”이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집을 짓고, 어떤 것을 창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한 인간의 모방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은 창조자이므로 인간도 하나님의 하위 창조자가 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인간의 창작 활동은 하나님의 하위 창조자로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나아가 예수님의 성육신은 형상 또는 예술 신학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형상이신 그리스도이기도 하다”며 “예수님은 로고스이면서 형상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의 보이는 형상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그를 만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십자가 형상처럼 예수님, 성경의 인물들, 거룩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의 성화와 성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중요하다”며 “왜냐하면 이러한 형상이 우리 눈에 들어올 때, 우리는 그 원형들을 기억하고, 더 사랑하고, 본받고 싶은 열망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망은 성화와 성상의 이미지 자체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성화와 성상에 묘사된 원형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육체성과 물질성을 취하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성육신은 영적 의미뿐 아니라 육체와 물질의 가치와 물질적 표현의 중요성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우리가 말씀이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할 때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듯이, 형상이신 예수님, 즉 예수님의 육체성과 물질성을 간과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플라톤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은 육체성과 물질성을 인간 삶의 여정에서 장애물로 여겼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인간의 육체성과 물질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며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이고 물질적 표현에 충격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노동, 예술, 발명의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재와 우리의 다양한 현실을 모두 아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물질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지만, 특히 이러한 행위는 이 물질성 안에서 그리고 이 물질성을 통해 물질 이상의 것을 알게 된다”며 “특히 우리가 예수님의 성화와 성상을 만들고, 그 작품을 보며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은 영적 삶에 깊은 통찰력을 줄 수 있다. 예수님의 성화와 성상과 같은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형상은 실재보다 크거나 실재를 능가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볼 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하거나 자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작품의 물리적 존재를 본능적으로 깊이 깨닫게 하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며 “물론 어떤 예수님의 성상도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신성함을 충만하고 완전하게 표현해 낼 수는 없다.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하위 창조자들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며 “우리는 말씀이며 형상이신 예수님의 형상을 통해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창국 #최창국교수 #복음과도시 #칼럼 #기독일보 #형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