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캄보디아 프놈펜과 태국 방콕을 선교사역 차 방문했다. 지금 캄보디아는 부흥의 열기가 한참 달구어지고 있고 태국은 한때 아주 짧은 기간 초급의 태풍 같은 부흥을 경험하고 지금은 전보다 강렬한 대부흥을 갈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한국 교회의 대부흥 역사를 잠시 회고해 보자. 1903년 원산에서 최초의 부흥이 일어났다. 감리교 선교사들이 모여 한국 선교에 대한 반성과 열기를 회복하기 위해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세운 가운데 회개운동과 부흥의 열기가 일어났다. 제1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 열기가 초급이었다면 이는 이보다 강한 부흥운동을 위한 조짐과 같았다.
드디어 역사적인 날로 한국교회사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온 제2의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1907년 평양에서 연초에 열리는 장로교 남전도회 전국수련회에 모여온 사람들은 부흥의 바람을 기대했다. 사경회 시간에 선교사들의 설교를 듣고 당시의 장로 길선주가 일어나 자기의 죄를 회중 앞에 나가 자복하며 회개하자 뒤를 이어 사람들이 너나없이 나와 자기 죄를 자복했다. 이것이 부흥의 불씨가 되어 진정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후로 길선주목사가 부흥운동의 주자가 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대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어서 김익두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말씀과 회개, 기사와 치유능력이 임하는 대부흥운동으로 이어갔다. 평양대부흥운동은 단순한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 교회와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 교회의 성장과 사회 개혁으로 이어졌다.
제3의 부흥운동은 원산, 평양을 이어 경성에서 일어났다. 경성 대부흥운동은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던 그 해에 탄생한 성결교에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 후반기에 성결교는 적극적인 전도운동을 일으켰다. 먼저는 경성신학교에서 이명직이 일으킨 신학생 중심 전도운동이 있었다. 이 전도의 불씨가 교단적으로 옮겨붙어 지방전도대, 장날전도대, 전도부인전도대, 장막전도대 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드디어 1930년대 초기에 성결교회마다 성령의 불이 떨어졌다. 성결의 복음을 외치자 회개만 아니라 성령임재가 강하게 일어났다. 주로 연초 부흥회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이성봉이라는 순회부흥사가 등장해 교파를 초월해 전국교회에 대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시대를 뛰어넘어 대부흥의 역사는 한국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했다. 이제 세계선교 역사의 주역이 된 한국교회의 역할이 무엇일까? 제4의 부흥운동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금번 캄보디아와 태국을 방문한 목적은 세계복음화문제연구소가 한국의 신학서적이나 신앙서적을 크메르어와 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번역자를 찾아내어 번역 착수 계약을 맺고자 한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선교는 자국민 지도자를 키워 그들이 자기 나라를 복음화하게 하는 선교이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자국의 목회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세우거나 목회자 훈련원을 세워 사역한다. 이 일은 열악한 피선교지에 대부흥을 위한 불씨를 심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피선교지 자국어로 기독교 서적을 번역해 보급하고 자국민 지도자에게 부흥의 불을 일으켜 보자. 한국교회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제4의 대부흥운동이 각 나라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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