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낙태권’ 문제가 공동성명 초안에 빠지면서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AFP 통신 등 주요 언론은 낙태를 반대해온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낙태 찬성론자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설전을 벌이는 등 진통이 있었으며, 결국 멜로니 총리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고 보도했다.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의 단골 주제중 하나였다.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폐막된 G7 공동성명에도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와 낙태 후 치료에 대한 접근을 다루는 것을 포함해 모두를 위한 포괄적인 ‘성과 생식 건강권’을 달성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생식 건강권’이란 출산 문제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여성들에게 낙태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공동성명 초안에는 “우리는 포괄적인 ‘성과 생식 건강권’과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를 포함해 여성을 위한 적절하고 저렴하며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규정한 히로시마 공동성명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로 내용과 문구가 바뀌었다. ‘성과 생식 건강권’을 언급했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인 ‘안전한 낙태’라는 용어를 뺐다는 건 각국 정상들 간에 이견 조정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독일, 캐나다 정상들도 ‘낙태권’ 명시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낙태권’이 포함되지 않으면 서명하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멜로니 총리가 끝까지 반대함으로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언론들은 그 배경에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의 강한 입김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외교 소식통은 “다른 모든 국가가 (낙태권을) 지지했으나 멜로니 총리의 반대로 최종 문안에서 빠졌다”며 멜로니에게 낙태는 일종의 ‘레드라인(금지선)’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낙태 반대론자로 알려져 있다. 네오파시스트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 MSI에서 정치를 시작한 멜로니 총리는 2022년 10월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온건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 2019년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의 연단에 올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저는 조르자입니다”, “저는 여성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외치는 유튜브 영상이 조회수 1,200만회를 넘기는 등 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G7 정상회의에서 ‘낙태권’ 문제로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와 부딪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멜로니 총리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프랑스 의회가 여성의 낙태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언급했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 3월 4일 여성의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개정안엔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지난 1975년부터 법적으로 낙태를 허용해 온 프랑스에서 ‘낙태권’을 명기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다만, 헌법상 낙태할 자유를 명문화한 건 프랑스가 세계에서 최초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프랑스가 헌법에 ‘낙태권’을 못 박게 된 데는 미국의 낙태권 후퇴 움직임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022년 임신 약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사실상 낙태를 금지하자 서둘러 헌법으로 대못을 박은 것이다. ‘낙태권’ 개헌작업을 마크롱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금번 G7 정상회에서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낙태를 둘러싸고 충돌할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유럽 각국은 ‘낙태권’을 헌법적 권리로 명시한 프랑스에는 못 미치지만 임신 초기 낙태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이런 흐름에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마저 1978년에 낙태를 합법화했다. 다만 법은 의사들이 종교·개인적 신념에 반하는 경우 시술을 양심적으로 거부할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산부인과 의사의 68.4%가 ‘양심적 낙태 거부’를 할 정도다.

유럽의 낙태 문제는 태아의 생명을 여성 신체의 부수적인 개념으로 인식해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나라마다 임신 주수 등 제약을 두고는 있지만 비교적 폭넓게 낙태를 인정하고 있어 무분별한 낙태로 인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실정이다.

그런데 여성에게 태아 생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주는 법을 인권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그 어떤 동물들도 하지 않는 비정한 짓이다. 제 자식을 살해하는 걸 인권이라 하는 건 오직 오직 인간뿐이란 걸 알아야 한다.

G7 정상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는 진보진영이 보수를 비웃는 용어인 ‘꼴통’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동성애 반대집회에서 “나는 어머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라고 한 외침 속에 ‘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명을 출산해 키웠다’는 자긍심이 묻어난다. 신앙에 뿌리내린 그런 당당한 모성이 주요국 정상들이 당연히 여기는 ‘낙태권’을 온몸으로 막은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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