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이재근 회장)가 지난 1일 오후 제425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을 통해 진행됐다. 이날 ▲이고은 교수(전남대)가 ‘조선성교서회(예수교서회)의 제도적 번역실천 연구’ ▲이재근 교수(광신대)가 ‘미국 남장로회 하퍼 선교사 가문의 한국 생활과 선교사역: 전형과 비전형’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번역과 관련된 서회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먼저, 이고은 교수는 “조선성교서회는 전도용 소책자, 교리서, 찬송가, 교과서 등 다양한 기독교문헌을 제작했고, 「코리아미션필드」 와 「기독신보」 같은 정기간행물도 발행함으로써 선교사와 한국인 조사들이 번역가로 성장하는 모판을 제공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결정적으로 조선성교서회는 초기에 중국 기독교문헌을 유통 및 번역했으므로, 현지어에 미숙한 선교사가 모국어만 구사하는 현지인 학자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 서적류를 번역하는, 선교지의 전형적인 번역방식과 조금 다른 번역실천을 발전시켰다”고 했다.
그녀는 “번역과 관련된 서회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번역될 텍스트 선정과 번역원고의 심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당시 번역가들은 누구였으며, 이들은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번역했는가?라는 연구질문을 고찰하기 위해 서회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1890~1919년 시기를 셋으로 구분했다”고 했다.
이어 “중국 기독교문헌 의존기(1890~1904년)의 서회는 출판사로서 조직을 갖추고 번역원고 심사를 위한 절차를 마련했으며, 전략적으로 중국 기독교 문헌을 수입해 번역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며 “그 결과 당시 번역의 경향은 중>한 번역이 우세했고, 중문본을 직역하되 일부 수정하는 수준이었다. 영>한 번역도 일부 시도되었으며, 영>중>한 번역의 경우(예: 「훈아진언」) 영어 원서가 아닌 중문본을 저본으로 사용했다. 선교사들은 한학 배경을 가진 한국 지식인을 어학교사 및 번역조사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번역가로 경력을 쌓아갔다”고 했다.
또 “‘연합출판사 전환기’(1905~1909년)의 서회는 개신교계 연합출판사로 기능하면서 기본 교리서 외에 교양서, 교과서를 발행하는 등 점차 내용에 다양성을 보였고, 영>한 번역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영>중>한 번역사례로 「텬문략해」를 보면 지명과 과학용어는 여전히 중문본을 참고하되, 영어 원문을 번역에 참고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며 “번역가에 있어서는 이전엔 어학교사 한 명이 여러 역할을 맡았던 것과 달리 교사와 번역 조사를 구별하여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한학 배경의 지식인과 더불어 선교학교 학생들이 번역조사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첫 유급 전임총무 부임기’(1910~1919년)의 서회는 해외 후원금과 재조선교부의 후원금 덕분에 본윅을 전임총무로 고용할 수 있었고 종로에 신축 건물을 세워 출판사의 모습을 갖추었다”며 “해외 후원금과 사업 규모도 증가했으며, 판매망도 해외로 확장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에 비해 중국 기독교문헌의 영향력은 감소했고, 영서와 일서의 유통이 증가하면서 영>한, 일>한 번역이 증가하는 추세였다”며 “번역가로 해외 유학생들이 귀국하여 독립 번역가로 활동하였고 일부 선교사들의 경우 한국인 번역조사에 대한 의존도가낮아지는 등 선교사들과 한국인 번역가들의 역량이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고된 번역작업을 기피하고 있었다. 당시 서회가 번역서 출판을 우선순위로 삼았으면서도 번역가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 전형과 비전형의 조화
이어 두 번째로 발제한 이재근 교수는 “3대에 걸쳐서 하퍼 가문 선교사 8명이 총 66년 간 한국에서 활동했다”며 “1920년에 한국에 온 조셉 하퍼와 그의 아내(애니스) 및 누나(마거릿)는 목포에서 전도자와 교육자로 일평생 일하며 한국의 하퍼 가문(The Hoppers of Korea)의 대부와 대모가 되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조셉과 애니스의 아들 조 B. 하퍼와 콩고 선교사의 딸인 아내 도로시는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에서 그들의 부모가 목포에서 한 일과 거의 같은 일을 수행했다”며 “딸 마디아(메리)는 중국 선교사 자녀 G. 톰슨 브라운과 결혼하여 목포와 광주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활동했다. 조와 도로시의 딸 앨리스 룻 하퍼는 광주에서 1970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짧게 선교사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로 사역했다”고 했다.
특히 “2세대 대표자 조 B. 하퍼와 아내 도로시는 1986년에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한국을 지키며, 남장로회 한국 선교의 마지막 촛불을 직접 끄고 귀국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내를 통해 하퍼 가문에 합류한 G. 톰슨 브라운이 친구이자 처남인 조 B. 하퍼에 대해 발언한 위 내용이 하퍼 선교사 가문의 첫 번째 전형을 대변한다”며 “즉, 세 세대에 걸친 하퍼 가문의 선교사들은 호남 지역 순회 선교사의 전형이었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 전형은 하퍼 가문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이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북장로회를 연쇄 분열의 길로 몰고 간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의 여파는 보수 신앙을 더 오래 일관되게 유지한 남장로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한국 남장로회 선교회 내에서는 보수신앙에 근거한 통일성이 더 분명했던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전통적인 해외선교에 대한 미국 학계와 언론의 비판이 휘몰아친 1920~1930년대 논쟁에도 조셉 하퍼를 비롯한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거의 요동치 않는다”며 “하퍼의 1935년 유니언신학교 박사 학위 논문은 이런 보수성의 증거다. 이 보수성은 1937년에 남장로회 한국선교회가 일본 당국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어떤 내부 갈등 조짐도 없이 산하 미션스쿨들을 일괄 폐교하기로 결정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고 했다.
또한 “세 번째로 이들이 남장로교 신앙 유산에 충실했다는 것도 전형이다. 몇 대에 걸친 선교사 가문을 형성하려면, 그 유산이 대대로 전수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남장로교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다가 교단 배경 대학에 다니고, 같은 신앙과 소명을 가진 학교와 교회, 선교회에서 만나 배우자가 되고, 같은 소명으로 1세대 한국 선교사가 되었다. 본국에서 배운 대로 신앙을 가르치고, 자녀를 기르며, 소명을 전수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하퍼 선교사 가문에 무명의 순회 전도자, 보수 신앙, 정교분리 입장, 가족 유산 같은 전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뚜렷한 전형을 만들고 계승한 가문이지만, 한편 비전형도 있었다. 먼저, 하퍼 가문은 학문적 역량이 두드러졌다”고 했다.
이어 “호남 시골을 순회하는 선교사들이 박사 학위를 취득할 만큼 학구적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남장로회 선교사들 중 가장 지적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평양신학교 조직신학을 전담한 레널즈와 크레인도 박사 학위 소지자는 아니었다”며 “미션스쿨 경영에 참여한 교육선교사 중에는 박사 학위를 가진 이가 있었으나, 순회 전도자가 박사 학위를 가진 경우는 조셉 하퍼가 유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양신학교와 총회신학교에서 짧게 3년 미만 기간 가르쳤다”고 했다.
또한 “그의 사위 브라운은 하퍼 선교사 가문의 유산을 순회 전도자를 넘어, 행정가이자 학자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특별한 인물”이라며 “본래의 하퍼 가문 선교사들이 이룬 순회선교사로서의 전형을, 결혼으로 가문에 편입된 브라운이 선교지 및 본국의 신학교 교수이자 학장, 교단 행정가라는 비전형으로 확장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는 “1920년부터 1986년까지 총 66년 동안, 하퍼 가문 선교사들은 20세기 한국과 한국교회가 경험한 모든 역사 현장의 수난과 환희를 오롯이 함께 했다”며 “호남 지역 순회 전도자, 그들의 아내, 여학교 교사로서 이들은 거의 소리 없이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조용히 자기 일에 매진했다. 계승받은 신앙을 스스로 믿고 한국인 신자에게 가르치고 자녀들에게도 전수했으며, 정치와 사회 이슈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이런 성향 때문에 그들이 외부로 널리 알려지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아울러 “활동한 그 현장에서는, 이들은 없어서는 안 될 기둥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한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전형이 바로 이것”이라며 “한편, 같은 나라에서 활동한 세 세대, 66년, 8명 선교사를 한 가문에서 배출한 것은 비전형이다. 가문 창시자의 학문성이 그의 시대에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다가, 가문에 편입된 2세대를 통해 만발했다는 것도 특별한 비전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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