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우울증을 앓아온 20대 네덜란드 여성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생을 마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락사’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교계는 생명을 마감할 권리를 당사자의 결정에 맡기는 ‘안락사’ 즉 의사 조력 자살과 기계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은 네덜란드 당국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의사 조력 자살을 신청한 29세 여성의 ‘안락사’를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여성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은 후 지난 2020년에 처음으로 네덜란드 당국에 조력 자살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는 2002년에 세계 최초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의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후 2022년 기준 ‘안락사’ 인구가 전체 사망자의 5.1%인 8720명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추세다.

지난 2월 전 총리 부부가 ‘의사 조력 자살’로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안락사’ 문제가 다시 이슈화됐다. 93세의 판 아흐트 전 총리가 지난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행사에서 연설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되지 않자 동갑인 아내와 함께 ‘안락사’를 신청했고 이를 당국이 받아들여 의사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부가 함께 숨을 거두었다.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의 ‘안락사’에 대해 많은 언론이 ‘존엄한 죽음’이란 표현을 썼다. 자신의 남은 삶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됐을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는 의사의 조력을 받아 약물을 투입하는 자살의 한 방식일 뿐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존엄사’라 불리는 연명 의료 중단을 합법화했다. 연명 의료 중단은 생의 마지막에 인공호흡기 착용과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을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아직 의사 조력 자살, 즉 ‘안락사’는 불법이다. 일각에서 환자와 가족이 받는 고통을 감안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으나 자살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2022년 6월, 국회에서 최초로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됐다. ‘조력존엄사법’의 핵심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가 희망할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하도록 하자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엄격한 조건을 붙여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발의만 된 채 21대 국회 마지막 달까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조력 존엄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자살을 합법화하고 방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허용할 경우 사회 전반에 생명경시 풍조 만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들은 도입 단계에서 소위 안전장치를 내세워 국민을 설득했다. 아무나 함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며 그 전제 조건을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일 것 △환자가 담당 의사와 전문의 2명에게 조력 존엄사를 요청하고 해당 의료진이 허가한 경우를 들었다.

그런데 이런 안전장치들은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되고 난 후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환자 자신이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건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더 심각한 건 이들 나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대상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과 심지어 미성년자까지 포함되도록 확대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점이다. 이는 ‘안락사’가 얼마나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무가치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은 지난 27일 발표한 논평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사망케 하는 의료 행위인 ‘안락사’와 기계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만날 때 약물을 투여해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안락사를 선택해 고통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일 수 있다”며 “그러나 우리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락사’를 옹호하는 이들은 의사의 도움으로 삶을 마감하는 권리를 ‘존엄성’에 결부시킨다. 인간으로서 누릴 마땅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끊는 행위는 존엄성과는 무관하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낙태할 권리를 넘어 자살할 권리까지 보장받으려는 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성 자체를 부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무리 ‘조력 존엄사’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한들 자살은 살인일 뿐 그 행위를 존엄하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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