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사수”가 교단의 중요한 유산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0~22일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합동총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총회 신학 정체성과 정통성’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임종구 목사는 장로교단 분열의 와중에서 합동은 끝까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지켰다며 교단 정통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임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 분열사를 요약 정리하면서 “1952년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이 분립된 뒤 1953년 김재준 박사 면직 문제로 기장이 분립 됐고, 이어 1959년에 WCC 가입 문제로 통합이 분립됐다”며 장로교단 분열의 요인을 간추렸다. 분열의 결과 “고신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는 긍지를, 통합은 일제 강점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과 학교 등 장로교회 재산 모두를 소유하게 됐다”며 “그렇다면 예장합동의 유산은 무엇인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사수”라고 결론지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1643년 7월 1부터 1649년 2월 22일 사이에 신학자들이 영국 웨스트민스트에 모여 작성한 것으로 오늘날 세계 장로교회의 근간이 된 신앙고백서다. 전문 33장에 ①성경의 절대적 권위 ②하나님의 절대 주권 ③양심의 권리 ④교회 자체의 치리권 등의 내용을 성경적 입장에 기초해 정리한 장로교회의 대표적, 표준적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작성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공중예배 지침서’, ‘장로회 교회정치 체제’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장로교회의 헌장(憲章)이나 다름 없이 지켜지고 있다. 1648년에 개최된 에딘버러 총회에서 ‘대요리문답’(196문)과 ‘소요리문답’(107문)을 각각 승인하면서 이 두 요리문답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공인된 교리, 예배, 권징, 교회정치에 위배된 것이 전혀 없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설립시 이를 채택함으로써 한국 장로교회의 골격이 됐다. 당시 ‘12신조’ 서문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존중하여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 교인들이 신앙고백서를 교회의 회원 자격으로 고백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해 합동총회가 매우 귀중한 신앙 유산이란 의미를 부여한 건 다른 어떤 장로교단보다 이를 계승하고 지켜오는 데 있어 철두철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앙고백이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가 존 낙스와 제네바 신앙고백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전체적으로 칼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서 합동 교단에서 나온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다. 당시 전문 33장으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903년에 이르러 34장〈성령에 관하여〉과 35장〈하나님의 사랑의 복음과 선교에 관하여〉 등 2장이 첨가된 수정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나오면서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이를 미국 북장로교회가 곧바로 채택했고 1942년에 미국 남장로교회도 받아들였다. 미국 장로교회의 이런 변화가 교단 파송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장로교회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1647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2장이 추가된 1903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르는 교단으로 나뉜다. 예장합동과 대신, 합신은 1647년 신앙고백서를, 통합, 기장, 백석, 고신 등은 미국 장로교회가 채택한 1902년 신앙고백서를 따르고 있다. 또 합동과 대신, 합신은 ‘12신조’,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반해 통합은 ‘12신조’를 일부 수정하고 ‘대요리문답’을 폐기하는 등 교단마다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서 차이점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장로교 교리와 정치의 모범이자 표준이 되는 역사적인 산물이란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성경을 기초로 만든 것이지 곧 성경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적용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통합과 백석 등은 교단적으로 여성 안수를 허용하면서 ‘대요리문답’을 폐기했다. 반면에 합동은 ‘대요리문답’을 그대로 유지하며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교단마다 적용 방법이 상이하다는 뜻으로 이해될 부분이 아닌가 한다.
다만 최근 한국 장로교단 중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성경이 아닌 신학자들 간의 합의 문서를 굳이 지키고 따를 필요가 없다는 건데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장로교의 뼈대이자 근간이 된 신앙고백을 나와 상관없다 하면서 장로교라 하는 건 자기 부정 선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당시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모인 121명의 최고의 신학자와 상원의원 10명, 하원의원 20명, 총 151명의 총회에서 승인됐다. 1643년 7월 1일부터 총회를 개회해 1649년 2월 22일까지 약 5년 7개월 22일간 총 1,163회 이상의 회의와 기도모임을 통해 집대성했다. 이런 신앙고백을 성경처럼 떠받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하찮게 취급될 문서는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장로교가 아닌 다른 교단에는 의미가 없기에 따를 수 없다면 장로교 간판을 내리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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