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시는 미래를 현재에서 미리 맛보게 하고자 주어졌다. 즉, 요한계시록은 미래를 보여 주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계시다. 당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요한계시록 안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선교가 그들과 그들의 공동체에 주어진 현실을 살아갈 길과 힘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 딘 플레밍 교수(미드아메리카 나자린 대학교 신약학 및 선교학 석좌)는 협소한 성경 읽기를 넘어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구속과 회복에 초점을 맞춘 상황화된 시각으로 요한계시록을 읽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문화와 삶의 상황 속에 있든지 우리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계속 말하고 있다. 환상가, 예언자, 편지 기록자, 설득하는 자이며 상황화 신학자인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선교를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구현하라고 계속 요청한다.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은 성경 이야기 전반을 통해 우리가 아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며, 모든 민족을 자신과 화해시키시고 전체 창조 세계에 샬롬을 가져오는 일에 강고하게 헌신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표 상징이 죽임당한 어린양이 된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복음이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다름 아닌 상처 입고 죽어 가는 어린양을 통한 방식으로 세상 안에서 그분의 변혁하는 선교를 성취하신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성경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더 분명하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그림을 준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 목표이며 또한 현재의 소명이다. 요한은 이 환상이 우리의 존재와 살아가는 방식을 변혁시킬 때까지 이 교회에 관한 환상에 기대라고 우리를 초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세상에서 최종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심판인가? 그렇지 않다! 요한계시록의 최종 운명은 불못(계 20:7-15)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의 완전한 실현을 나타내는 새 창조다(계 21-22장).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끝을 위한 수단이다. 악의 파괴를 넘어 거룩한 도시가 있다. 그곳에서 모든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거룩한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계 21:3).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의 ‘할렐루야’의 외침이 반드시 우리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호소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요한은 나라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환상과 하나님이 나라들을 심판하고 죄인들을 그 도시에서 쫓아내고 문을 닫아 버리는 환상 사이의 긴장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나라들이 실제로 처할 가능한 결과로 둘 모두를 보여 주는 것 같다. 그 결과는 교회의 복음 증언에 나라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선교적 요한계시록 읽기에서는 또한 우리에게, 미래가 현재로 빛을 비추어 우리의 길을 인도하게 하라고 가르친다. 외부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보면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증거를 보는가? 우리 귀 있는 자들은 성령께서 오늘날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바를 정말로 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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