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묘역을 지나다 보면 배위 합장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꽤나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미망인들의 오랜 한숨과 진한 아픔이 서려 있다. 비석의 뒷면이 중요하다. 1950년 남편을 나라에 바치고 최근에 세상을 떠나 함께 묻힌 분도 있다. 스무 살 전후에 홀로되어 70여 년을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때는 사라지는 나라를 목숨으로 찾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 전상용사, 미망인, 유자녀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감정이 보훈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재정적 어려움이 컸다고 하지만 국가가 이들을 보살피지 못했었다. 수많은 전상자와 유가족, 미망인이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할 분들이 실의와 고통 속에 살았다. 그로 인해서 당사자는 물론 보훈의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1961년 원호처가 창설되고 군사원호 보상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원호처가 생기고 법령이 구축되었어도 오랜 기간 재정적인 제약으로 원호법은 항상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1984년 원호를 보훈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국가유공자 예우에 대한 법령이 제정되었다. 보훈의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긋는 보훈의 변화이다. 그러나 이름만 근사하게 붙여놓고 실제 예우와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차별 보상금 인상계획안을 만들어서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아 두었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도 기본연금이 백미 반 가마(3만 원) 구입가에도 미치지 못했다. 좋은 말로 보훈이지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1994년 6월 국정홍보처가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실시한 안보 및 보훈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가 있었다. 보훈에 관한 여론조사였던 것이다. 그 결과 ‘보훈 가족을 대할 때 감사한 마음은 가진다’(46.8%), ‘보훈정책 수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55.3%), ‘국가유공자 복지 증진 방안으로 자립 지원이 중요하다’(46.8%)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이 보훈 공무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보훈의식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내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0년 이후 보상금 현실화라는 말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이미 정부 정책이 복지정책으로 장애인과 보훈 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교육, 취업, 자립, 의료 요양, 주택 등의 지원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교육, 취업, 주택 등의 지원을 수많은 취약계층과 함께 실시하므로 국가유공자의 지원은 오히려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의료, 복지시설은 완전히 달라졌다. 보훈병원(6개, 3,417병상), 보훈요양원(8개, 1,600병상), 보훈원(양로 주거시설), 보훈타운(보훈가족 공동아파트), 보훈재활 체육센터, 복지관, 보훈회관 등이 보훈 가족의 건강과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다.
그와 함께 국립묘지, 기념관 등의 현충 시설도 크게 늘어나고 현대화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보훈은 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예우, 그리고 공훈 선양이 조화를 이루며 선진국에 손색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 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2020년 12월 27일)와 공포(2023년 3월 4일)로 국가보훈처는 2023년 6월 5일 창설 62년 만에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어 새출발을 하였다. 높아진 조직의 위상과 정책역량의 배가로 보훈정책의 큰 발전이 기대된다.
국가보훈은 전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어떤 역경도 이겨 나갈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내준 분들과 교감하며 그 분들의 호국정신을 따라 나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한국교회가 앞다투어 현충원을 찾아서 순국과 호국의 선배들과 만나길 원한다. 현충원에 잠든 분들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의 결단과 용기를 본받으면 자유 대한민국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가정, 교회, 공동체를 수호하고 발전시키고, 내일의 대한민국과 가정, 교회, 공동체를 보증하기 위해서 반드시 현충 시설을 활용한 국가보훈의 생활화를 다시 한번 권면한다. 예를 들면 ‘1교회 1전적지(현충 시설)’ 자매결연으로, 매년 추모예배와 추모행사를 통한 나라 사랑과 국민 통합 사역을 믿음으로 교회가 주도하기를 바란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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