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7주 차에 접어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집단행동 당사자인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얘기를 듣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대통령의 전향적인 자세가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교계는 위기 극복을 위한 금식 기도를 호소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료공백 사태의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다만 대부분이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데 할애해 의료계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중재에 나서 윤 대통령에게 “전공의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했고, 윤 대통령이 전공의를 직접 만나겠다는 메시지로 화답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전공의 대표를 만날 경우, 관심은 정부가 의대 정원을 1년에 2000명씩 5년간 증원하기로 한 계획이 어느 수준으로 조정이 이뤄질지에 쏠린다. 이 문제가 전공의들이 반발해 병원을 떠나게 된 핵심 쟁점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의사 증원 규모 재조정 문제를 비롯해 전공의 처우 개선, 지역·필수 의료 지원, 의사 사법 리스크 경감 방안 등 의료 개혁 의제 전반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전공의들을 향해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 달라”면서 증원 규모 재조정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 개혁방안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발 수위가 예상보다 크고 또 장기화하면서 그 피로감이 다시 국민에게로 돌아오게 된 게 문제다. 많은 국민이 여전히 의사 수 부족으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급격한 의대 증원이 불러온 의료계의 반발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역풍이 정부와 대통령에게 부는 실정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게 된 건 이런 고심의 결과다. 최대 쟁점인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해 의료계를 향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한 것도 더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강경 일변도였던 과거의 자세와 비교할 때 유연하게 변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윤 대통령이 전공의를 만나겠다고 한 건 사실상 정부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방안이 의사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지만, 의료계가 더 좋은 의견을 제시한다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전의교협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윤 대통령이 만나자고 할 경우 조건 없이 만나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가운데 의외의 해결방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의료계의 태도다. 윤 대통령이 의료계를 향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달라며 한 걸음 물러서고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음에도 ‘증원 백지화’가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며 일체의 제안을 일축하는 분위기가 발목을 잡고 있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의 도 넘은 정치 발언도 사태 해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의협 차기 회장으로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소신을 밝힐 수는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부인을 향해 원색적이고 인격 모독성 발언을 서슴치 않는가 하면 SNS에 “의대생·전공의·개원의·교수들이 총선에서 확실하게 (국민의힘) 표가 날아갈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하는 등 선거 개입성 발언을 하는 건 의-정 갈등의 본질을 흐리고 사태 해결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런 현실을 보다못해 교계가 발 벗고 나섰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일 ‘의료 대란’과 관련된 호소문을 발표하고 3일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했다. 한교총은 호소문에서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의료 대란으로 인해 신음하는 국민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응급 환자들은 물론 수술을 급하게 기다리던 중증 환자들은 마음을 졸이며, 걱정하는 가족들과 함께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 전체가 하루 종일 금식하며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료 대란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한교총이 한국교회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에 전념하자고 한 건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정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벌어지는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가중되는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깊은 우려가 한국교회로 하여금 나라를 위한 금식 기도에 돌입하게 한 직접적인 배경이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결의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시작된 소위 ‘빅5’의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그 여파가 동네 병원으로 이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 불안감도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유불리를 계산하느라 적극적인 대안 모색을 꺼리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의료 공백 사태가 정부와 의료계에서 비롯됐고, 당사자 모두 책임이 있는 만큼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순서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기도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탠다면 갈등이 쉬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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