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왕하9:25,26)
최고의 배역이 최고의 형통?
북왕국의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는 것이 열왕기가 강조하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여로보암이 행한 죄 중에는 일반 백성들로 제사장을 삼은 것도 있습니다. 본인이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이 아니고 신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느밧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거의 매번 붙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그런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또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일반 백성들로 제사장직을 세웠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왕국에 비교해서 북왕국만의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신하들이 계속 반역을 해서 왕조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했던 왕조가 바로 오므리 왕조였습니다. 오므리도 군대장관 출신으로 즉, 쿠데타를 감행해 왕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쌓았는데 원래 그 산 주인의 이름이 ‘세멜’이라 사마리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왕상16장) 오므리의 아들이 악명 높은 아합이고 아합의 아내가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인데 그 이름의 뜻이 “옛 바알”일 만큼 최악의 우상숭배 죄를 선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대 만에 망하는데도 북왕국에선 그 왕조가 가장 길었던 축에 속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도 최고로 강력하고 융성했습니다. 열왕기하가 아합이 죽자 모압이 반역을 했다는 말로(1:1) 기록을 시작할 정도로 아합이 재위할 때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기록입니다. 이들의 죄악이 가장 큰데 나라는 가장 번창했다고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가 갖는 의문이자 불만인 왜 악인이 형통하는지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거의 필연적으로 의인의 고통을 동반합니다. 악인의 형통은 그렇다 치고 의인이 형통하지는 못해도 평안은 보장해야 하는데 오히려 고난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박국이 의인은 왜 고통을 받느냐고 두 번째로 질문했듯이 하나님은 두 배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거기다 아합 왕조의 시조인 오므리는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했습니다. 악이 번지지 않도록 하려면 악을 시작시킨 장본인을 벌을 주어야 하는데 세상의 악인들이 평안히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대가 지나서야 심판이 완성되니까 하나님은 이제 세 배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본문 25절에서 여호와가 이와 같이 그의 일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사대 만에 심판을 받을 것을 하나님이 예언했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한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그 기간 동안에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의인을 그렇게 오래 동안 고통 속에 방치하는 것도 그분의 계획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제 네 배로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결국에는 심판할 것이며 악인들도 당신만의 인내와 긍휼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겠다는 뜻인 줄은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악인들은 죽을 때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그런 기미도 없이 평안하고 호사스런 죄악 중에 죽었습니다.
또 정말로 악인을 회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류 역사 수천 년이 흘렀으면 뭔가 상당히 선해진 모습이 보여야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갈수록 더 타락해져가고 악인도 더 형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하박국 선지자 이상으로 답을 얻어서 정리해 놓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의 심판 원리에 대해 새롭고도 폭넓게 접근해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가장 먼저 주지해야 할 사항은 세상 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신자의 잘못입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그러니까 악인입니다.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돈을 탐하는 자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돈을 지키고 불려서 돈을 자손에게 상속시킵니다. 죄악이 대대로 유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돈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인간 이성이 깨이면서 돈을 벌고 쓰는 일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검증 평가 수정하는 제도와 법률을 많이 개발해서 실행하고 있습니다. 최고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했어도 신용경제와 실명제가 완전 확립되어서 검은 돈의 흐름이 가장 적습니다. 돈의 흐름이 공정하게 관리되니까 부자에 대한 반감도 적습니다. 건국의 선조들이 모든 제도를 기독교 신앙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다시 말하지만 돈 독이 오른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럼 인간 사회의 불합리 불공평 빈부격차 등을 조성한 것은 전부 인간이며 그것들을 제거하여 깨끗케 할 책임도 인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자들더러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 인간 사회의 모순과 불공평을 해결하라는 뜻입니다.
신자가 그 답을 어떻게 얻어야 합니까? 역설적으로 말해서 하박국이 가진 의문과 불만 자체가 모순임을 먼저 시인해야 합니다. 그런 의심 불평이 생기면 일단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책임이 없고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답을 얻었습니다.(합2:4) 하박국서를 자세히 보면 여전히 대적이 침공하여서 패배가 뻔히 보여서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그래서 과수원의 소출이 없을 것을 알고도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바꿔 말해 선지자는 의인은 일시적으로 고통 받아야 된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반드시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의인을 회복하고 악인을 심판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라면 선지자의 생애 중이 아닐 수도 있고 몇 세대가 지난 후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처럼 사대 만에 오므리 왕조가 멸망하거나 애굽에서 사백 년 만에 이스라엘을 구출해내듯이 말입니다.
신자가 누리는 최고의 축복
믿음이란 그럼 역설적으로 말해 의인이 고통을 받을 것을 미리 알고도 감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더 선해지거나 종교적 의무로 순종하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나 오늘날의 신자들이 쉽게 놓치고 있는 절대적인 영적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신자라고 믿은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런 영적인 상태는 동일합니다. 단지 의인으로 칭함을 받은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 형벌을 면제 받은 것뿐입니다.
아합 왕조를 심판한 예후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너무나도 잔인한 형벌을 집행합니다. 모든 왕족들은 나이 불문하고 몰살합니다. 우상을 섬긴 제사장들을 속여서 신전에 가두어 놓고 몽땅 죽입니다. 아합에게 동조한 세력들도 몽땅 처형합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진멸의 심판을 내린 유일한 경우일 것입니다.
예후는 오늘날의 윤리 기준으로 따지면 아합 못지않은 악인입니다. 오므리 왕조 특별히 이세벨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가 그만큼 엄청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성경은 엄숙하고 심각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것만이 선이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예수를 믿어야 구원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상태는 죽을 때까지 죽어 마땅한 죄인임에도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있지만 옥합을 깨트린 한 여인의 행위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선포한 이유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이 고난을 믿음으로 기도하고 인내하며 이기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바울이 인용 해석한대로 십자가 구원의 원리입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신자도 고난 중에 죽을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믿을 수 있기에 의인입니다.
그럼 신자가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함께 교제 동행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선을 세상에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상의 악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따라오는 핍박도 신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시 신자만 손해 본다고 여겨집니까? 그럼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 그래서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악이고 그분의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악과 저주를 영원토록 벗어난 것만큼 큰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언제 어디서나 제일 먼저 확인할 것도 내가 정말로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분만이 선이기에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과 문제도 그분의 선에 바탕을 둔 것임을 분명히 확신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하나님이 아니라 내 믿음에 하자가 생긴 것입니다.
2018/8/4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