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칼럼을 두 번 쓰고 있다. 2000년대에 연구소 시작과 동시에 교회연합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 사역에 대해 인터뷰하겠다며 기자를 보내왔다. 그 때 온 기자를 통해 2년간 평신도목회 자체에 대해 이론적인 측면을 쓰게 되었다. 그때 2년 간의 칼럼을 통해 우리 사역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사역의 전개와 확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그 신문 기자는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연세대 학생이었고, 우리 연구소 스태프가 되어 몇 년간 함께 사역도 하였다. 지금은 미국으로 유학 가서 마치고 뉴욕의 좋은 교회에 청빙을 받아 목회를 잘하고 있으니 더더욱 감사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현재의 기독일보에 또 칼럼을 쓰고 있으니 감사하다. 그때는 이론적으로만 썼는데 지금은 사역을 20년 한 후에 쓰고 있으니 실천에 대한 글들을 쓰게 된다. 즉 이론을 먼저, 그 다음에 실천을 하게된 셈이다. 즉 실천, 이론, 실천의 단계들을 거친 것이라 본다. 어떤 사역이든 실천도 필요하고 또 이론도 필요하다. 멜빈 목사님은 실천 먼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이론화하였다. 반대로 나는 이론을 먼저, 그 다음에 실천을 한 셈이다.
어떤 방법이든 이것이 저것 보다는 더 낫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것은 어쩌면 상황에 따라 순서가, 또는 당사자의 취향에 따라 정해질 수가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론, 실천 두 가지가 확실히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께서는 목회 자체만으로 바쁘니 이론보다는 실천을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다 수긍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사역에대한 자신감을 갖기 어렵고, 그럴 경우 그 사역은 단명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서 평신도인 경우에는 실천 80%에 이론 20% 비중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사역을 실제로 하는 것은 평신도들이니 실천에 비중을 두어야겠다. 그러나 사역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실천면뿐만 아니라 이론이 정립되어야지 설명할 수가 있고 또 사역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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