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위임목사)가 4일 주일예배서 ‘빈 손으로 일으킨 기적’(사도행전 3:1-10)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으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공동체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오순절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더욱더 담대한 증인들이 되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 교제와 나눔으로 하나 되었다. 그들은 모이기를 힘썼고 또 자신의 물질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섬김과 참된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는데 첫째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향하여 어떤 주장을 하기도 전에 그러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고 했다.
그는 “성령에 사로잡힌 그들의 모습 세상과 다른 관점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때로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또 다른 반응은 존경과 칭찬이었다. 물질을 나누어주며 섬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하나 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했다. 한편으로는 두려움, 한편으로는 칭찬 이러한 반응이 세상으로 일어날 때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라'는 말씀이 사도행전 2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이처럼 성령받은 증인들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칭찬을 받는 사람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이 공동체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셨지만, 그 예수님께서 성령 받은 증인들을 통하여 그 공동체를 통하여 여전히 임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 공동체에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작은 예수님과 같았다.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예수님이 임재해 계시는 모습이 그들을 통해 나타났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고 통하여 여전히 세상 속에 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사도행전 3장에서는 특히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만난 한 사람과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공동체를 이끄는 중요한 지도자들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제자였을 때도 앞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성령 받은 증인들도 가장 앞서 그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교회의 축복은 너무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고 서로를 붙잡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이유도 바로 이기적으로 그리고 다툼과 분열로 얼룩지는 이 세상과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하나될 수 있고 이기적이지 않게 살아갈 수 있구나라는 그들의 모습이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오후 3시에 올라갔다. 그들은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지켜왔던 유대 사회의 습관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들의 공동체는 어떤 새로운 종교를 창설한 것이 아닌 그들이 살아온 대로 그대로, 그 습관 그대로 지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항상 형식을 먼저 바꾸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먼저 바뀌는 것이다. 형식을 아무리 바꿔도 바른 내용이 없으면 형식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성전에 정기적으로 기도하러 가던 그들의 습관을 그대로 지켰지만, 이제는 기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그들과 동행하심을 체험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요한과 베드로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성전의 문 앞에 앉아 있는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걷지 못한 한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다. 날마다 어떤 사람들이 그 사람을 그 문 앞에 데려다 주어야만 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느 날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그 사람을 마주하고 주목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 받은 증인이 되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때 예전에 주목하지 않던 사람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간증을 공통적인 것을 모아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고 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이 사람을 향해서 우리를 보라고 했다. 이는 이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외칠 수 있는 담대한 증언이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들을 뭘 보란 말이오'라고 그랬을 때 '당신들이 보아야 될 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며 “그때 베드로가 한 말이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였다. 그러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걸으라는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말했다. 앉은뱅이는 지금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기에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당황스러운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와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발과 발목의 힘을 얻어 그가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요한과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빈손이었지만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기적의 통로가 되었다. 교회는 은과 금으로 세상을 바꾸는 공동체가 아니다. 은과 금은 물질만이 아니라 어떠한 세상의 권력 세력 그 어떤 것들 모든 것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로 세상을 바꾸는 공동체가 아니라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주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능력이 이런 빈손을 때 더 큰 능력이 나타난다. 정 반대로 교회가 은과 금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을 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하여 교회가 바뀌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교회의 역사 중세교회는 세상의 중심이 교회가 있었고 정치 권력 심지어 재정까지도 교회가 중심이 되었던 시대였다”고 했다.
그는 “오늘이 시대 교회에 주님의 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의 손에 무엇인가 가득 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빈손이 되어 주님의 이름의 능력만을 의지할 때는 주님의 역사가 오늘이 시대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지에는 이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만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오직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이 나타나는 선교 현장이 많이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것의 목록을 나열하고 나중에 예수님의 서명만 붙이면 다 이루어진다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이라면 반드시 하셨을 일들 또 예수님께서 반드시 원하시는 일들을 성령받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고자 할 때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는 이들이 그 이름에 합당한 일을 행하려고 할 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이 목사는 “세상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해 '우리를 보시오'라고 담대히 말하며 우리에게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라고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유일한 능력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자신이 체험하고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그 이름의 능력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를 축원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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