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기윤실 이사, 전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박사가 3일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홈페이지에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임 박사는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는 우리는 역사적 위기의 시대를 함께 경험하고 견뎌내고 있는 동료들이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 ‘우리는 하나의 세계다’라는 낭만적 세계화의 구호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미-중 갈등으로 무색하게 되었다”며 “심화하는 신냉전으로 지구촌에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국가들은 ‘자국민 우선’과 ‘강대국 우선’을 말하며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시편 133편을 노래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세계화의 모순으로 나날이 심화하는 지역·국가·계층 양극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지는 사회, 사회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운 ‘세습 중산층 사회’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의 모순적 상황, 디지털 전환과 함께 강화되는 확증 편향으로 인한 갈등 심화의 현실에서 시편 133편을 노래하기는 쉽지 않다”며 “‘양극화와 갈등의 심화’로 ‘공정’한 삶과는 더 멀어진 ‘각자도생’이 현실이 된 사회 안에서 우리가 함께 평화를 경험하며, 노래하고 꿈꾸기는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제는 ‘믿음’”이라며 “성난 파도가 밀려오는 상황, 코로나19와 같은 자연적 재난과 남북한 관계를 비롯한 세계적 갈등의 심화 상황에서도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힘은 믿음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이어 “지금 나의 눈에 보이는 현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현실이 실체의 전부가 아니며, 오늘의 어려움이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 믿음”이라며 “믿음은 우리에게 현재의 무력감과 열패감과 고통과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을, 소망을 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제자들이 탄 작은 배를 깨뜨려버릴 만큼 거센 파도지만, 믿음은 이러한 일의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믿음이 없던 제자들을 위해서도 우리 주님은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라는 말씀으로 바람을 그치게 해 주셨다. 이것이 은혜”라며 “그런데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진 후, 즉, 위기가 지나간 후에 제자들은 이전보다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임 박사는 “마가복음 4장의 말씀은 현상적인 위기의 극복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준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 이후에 더욱 믿음의 진정성이 중요해진다”며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중에도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이른바 뉴노멀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사회와 교회의 위기는 더욱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와 충성과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 죄로 인해 그 유한성에 뒤틀림까지 더해진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신뢰하며 충성을 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은혜이다. ‘오직 믿음’과 함께 ‘오직 은혜’가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고 전해졌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라고 했다.
또한 “뉴노멀을 이야기하며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시대, 강자 필승을 말하며 생존을 위하여 끼리끼리 부족을 형성해 가는 오늘, 참 위기의 시대이지만, 이때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며 “오늘이 바로 은혜(Gabe)받은 이들이 과제(Aufgabe)를 수행할 때”라고 했다.
아울러 “교회는 이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맛보고 실현하는 장소이며 도구가 되어야 한다. 세상 안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하나님 나라 시민의 정체성을 지니고, 그래서 세상은 사랑하나 세상의 풍조는 거스르며 살 수 있는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자”며 “우리의 ‘마음을 넓혀’(고후 6:13) 교회다운 교회를 세움으로써 이 땅에 희망을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충심으로 소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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