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제주도의 한 수련원이다. 지난 월요일에 개척교회를 하는 사위 목사와 그가 섬기는 아동보호소의 청소년들과 함께 이곳에 내려왔다. 제주에서 귤 농장을 하시는 00감리교회의 권사님께서 귤 농사를 지은 후 아동보호소의 선교 비에 사용하라고 일정부분 봉헌해주셨다고 한다.
어제 밤 식사 후에 찻집에서 보호소의 청소년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하여 간증했다. 한 학생이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 기도를 하는 중에 찻집 주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였다. “찻집을 운영하는 사장님 가정도 예수님을 잘 믿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곳에 들고나는 손님들도 예수님을 믿어 천국백성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주인이 그 기도를 들었는지, 기도 후에 귤을 갖고 들어와 우리에게 건네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본래 인천에 있는 감리교인이었다는 이야기며 아내는 장신대에서 지휘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헤어질 즈음 황금향이라고 더 갖다 주어 주안에서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누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위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제주도민이 제주에서 귤을 사 먹는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답니다”
나는 이 말을 2023년 12월 8일 오후 3시 20분경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로부터 출교판결을 받은 이동환을 향해 또는 그를 지지하는 목사라는 사람들과 교수라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목사가 출교를 당하였으면 그간 목사로서 무엇을 증거하였으며 목사로서 보인 행보가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동환이 출교를 당한 이후에 그의 아내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과 그를 지지하는 목사들의 행태를 보니 가관이다. 경기연회 재판위원들을 향해서는 거의 겁박 수준이다. 앞으로 대규모 기도회 등 조직적인 운동에 나서겠단다. 너무나 잘된 일이다. 그동안 쓰고 있었던 양의 탈을 벗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죽은 다음이 아니어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한 영혼이라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는 것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한때 감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A목사는 2022년 4월 20-21 금란교회에서 제42회 서울연회가 열릴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연회 2일 차 품행 통과 시간에 연회 회원 중에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었다.
“A는 테드제닝스의 제자로서 목사 안수를 주면 안됩니다. 테드 제닝스는 예수님을 동성애자라고 하며 열 두 제자들과도 동성애 관계였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A는 이런 자를 스승으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테드제닝스가 죽었을 때 ‘스승이며 영혼의 친구 테드 제닝스를 기리며’라는 제하의 글을 매체에 기고하기도 한 자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광호 전 서울연회 감독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밤에 A를 만나 그렇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가 써준 글을 대신 읽어 주겠다.”
그리고는 감독의 권위 운운하며 연회 회원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목사 안수를 줬다. 당시 감독은 A를 옹호하며 대신 읍소해 주었는데 어떤 이는 그 상황의 소식을 듣고 “감독이 A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동스러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고 조소하였다.
나는 그때 서울연회 회원으로서 A에 대해 발언을 하고자 하였으나 이광호 전 서울연회 감독은 일방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광호 전 감독은 A의 실체를 보지 못했고 아니 못 본 척, 모르는 척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A가 감추고 있었던 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무엇일까? 사람은 신앙을 떠나서라도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 이동환의 출교에 대한 A의 발언을 보라.
<감리회 소속 신학생∙목회자들은 이번 판결이 감리교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연회 A목사는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부터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받는다. 반면 교회 내 교인 대다수는 60대 이상이고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도대체 감리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선교하고 교회를 유지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이건 이념이나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신념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연대하는 목회자 한 명쯤은 교단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목회자들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2023년 12월 12일 뉴스엔조이 기사 중에서-
감독의 권위는 무엇일까?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행한 일들은 죽음 너머에서만 판결을 받는 것이 아니다. 참과 거짓은 그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 분별하게 하신다.
나는 이 곳 제주에서 3박 4일의 일정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함께 머물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며 찻집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속화의 물결이 급물살을 타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 전반에 강타하고 있는 이 때, 청년이나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 본다. 40여 년 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현장에 들어섰을 때와 이 시대의 목회현장과는 너무도 다른 세대의 간극이 있다. 아마도 이전의 어르신들도 우리 세대를 보며 그렇게 느끼셨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본다.
“유구한 세월이 흘러도 세대의 간극을 허물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세대를 초월하여 하나 되게 하시고 영으로 소통하며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던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목회자의 삶이든지 평신도의 삶이든지, 나그네 인생길이 험하고 어려워도 능히 살아내게 하셨던 그 능력의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복음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혼잡하게 한 것일 뿐, 답은 명확하다. 바로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님을 통하여 말씀이 증거 될 때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변화된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권능에 있었다. 그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옛 믿음의 선진들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웠다. 순간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실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죄인인 나를 위한 것임을 전심으로 믿을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누추한 삶을 청산할 수 있다. 동성애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이 땅에서도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b-21)
바울은 모든 것을 가졌으나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전부를 바쳤다. 그는 천상의 삶을 경험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며 실제다. 기쁨과 만족한 삶은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것을 부정하며 가르치는 자를 어찌 목사라 할 수 있는가? 어찌 참된 기독교라 할 수 있겠는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