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5-7)
시인은 환난 중에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더니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1절) 그런데 그 환난이 발생한 근거와 환난이 진행되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건짐받기 위해 기도하는 고난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질병, 사업실패, 자녀양육의 어려움 등등 현실적 고난이 거의 전부입니다. 반면에 기자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2절) 구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말로 속은 정도라면 최고로 중해도 사기로 경제적 손해를 보는 정도입니다. 제대로 이성이 깨어서 인생살이의 분별력이 있으면 당하지 않을 고난입니다. 아니 말이 많은 사기꾼은 아예 상대를 않으면 평생 겪지 않을 고난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그런 환난에서 심지어 “내 생명을 건져달라”(2절)고 기도합니다. 그럼 일상적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너무나 큰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이 무엇인줄 알 수 있는 힌트가 바로 5절입니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화가 되었습니다. 거짓에 속아 그곳에 머물렀던지 아니면 그곳에 머물다보니 온갖 거짓으로 화를 입었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메섹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야벳의 아들입니다.(창10:2) 노아가 세 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때에 야벳에게는 장대함 즉, 물질의 풍요를 빌어주었습니다. 메섹에 머문다는 것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로, 게달의 장막에 머무는 것은 이스마엘처럼 들나귀 같이 세상을 마구 돌아다니는 자를 뜻합니다.(창16:2, 21:20) 들나귀가 주인 없이 제 멋대로 뛰놀듯이 자기 생각 계획 감정 욕심에 따라 세상의 형통만 추구하는 자입니다.
그럼 세상방식으로 사는 것이 시인에게 화가 되었는데 그 이유가 세상은 진리가 부재하고 오직 거짓만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인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쾌락 안락 형통만 추구하는 삶은 거짓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거짓으로 아담을 속여 살인한 사탄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자기 생명이 죽어감을 느끼고 단순히 세상에 속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건져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물론 아담에게처럼 사탄이 기자에게 직접 거짓으로 속인 것은 아닙니다. 참 진리이신 하나님과 등을 진 자들과 그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기자에게 죽음으로 이끄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롭게도 그들은 화평을 미워하고 싸우기만 한다고 말합니다.(6,7절) 근본적으로 화평을 아주 싫어하는 자가 있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작금 세계는 온갖 종류의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모든 이들이 분쟁을 줄이고 화평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화평을 싫어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귀의 자녀들은 분쟁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그러려면 거짓 궤계 사기가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그 전에 세상은 인간끼리 무한경쟁을 하는 곳이라 거짓이 이미 그 운영 원리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물질이 안락을 준다는 거짓에서 시작하여 거짓 열매를 찾기에 그 과정도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아담때부터 가시덤불로 가득 차서 화평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등을 돌린 사람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주도적 흐름과는 거스르며 하나님의 진리대로 따르는 자들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거짓으로 사는 자들은 본성적으로 진리로 사는 자들의 원수가 됩니다. 신자에게 거짓으로만 대하며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곧바로 핍박합니다. 따라서 거짓으로 사는 자들은 자기들끼리도 분쟁을 일삼고 또 그런 경쟁 밖에 있는 자들과도 분쟁합니다.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거짓된 수단을 무차별적으로 동원하여 경제적 이득만 챙기려 듭니다.
결국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고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자명해졌습니다. 의도적으로 분쟁을 일으켜 화평을 없애면서 재물만 모으려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거하는 사람과 재물과 상관없이 분쟁으로 인한 고난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겠다는 자입니다. 요컨대 세상과 그안의 거짓의 사람들과 분쟁으로 인한 환난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어야만 온전한 신자라는 뜻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둘 중 어느 사람입니까? 처한 상황은 안락과 형통인지요? 분쟁과 환난인지요?
2019/1/12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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