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지난 15일(현지시각) 제78차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다음 달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될 계획이다.
이번 결의안은 최근 벌어진 중국의 재중 탈북민 강제북송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나 강제북송 주체자를 중국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북한인권단체들이 인용한 유력한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항저우 아시아 게임을 전후로 세 차례(8월 29일, 9월 18일, 10월 9일) 탈북민 600여 명의 강제북송을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지난 2020년 초부터 시작돼 북한의 국경봉쇄가 공식 해제된 지난 8월 27일까지 중국 변방대 구류소에 감금됐던 탈북민은 총 2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북중 국경봉쇄 해제 이후 진행된 세 차례의 강제북송으로 현재 중국 교도소에 남겨진 탈북민은 1000여 명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본지는 지난 21일 고려대 캠퍼스에서 이신화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대사는 “중국이 비준한 유엔 난민의지위에관한협약(난민협약), 고문방지협약 등을 근거로 중국의 재중탈북민 강제북송을 저지하도록 규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어떤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대사는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함께 중국의 재중 탈북민 강제북송을 규탄하고 추가 북송 저지를 촉구하는 공동의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신화 대사는 또한 북한의 인권 침해와 북핵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해외노동자에 대한 강제노동 등 인권 침해 행위로 불법무기개발의 자금을 확보해왔다”며 “40여 개국에 파견된 북한 해외노동자들이 18시간 동안 노동을 하며, 벌어들인 돈의 90%를 김씨 정권에 보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따로 부업을 해야하는 등 가혹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 침해는 공포정치를 통한 정권 유지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했다.
이신화 대사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험과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피폭과의 연관성을 토대로 북한의 핵실험과 인권 침해를 동시에 규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북한 정권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평안북도 영변군 핵시설에서 핵실험을 6차례나 강행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핵시설 인근 주민은 물론 과학자, 노동자, 보위부 관리, 군인 등이 피폭 위험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약 1.5km 떨어진 지점에 ‘화성’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 수용소 수감자들은 핵실험 이후 방호복 등 보호장비 없이 핵폐기물 처리에 직접 동원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라고 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총회에 제출한 ‘북한 안전조치 적용’ 보고서에서 최근까지 풍계리 핵실험장의 활동 징후 및 영변 핵시설 증개축 모습이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출신 탈북민들은 지난 9월 20일 제 20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길주군 탈북민들의 핵실험 피해 증언’ 기자회견에서 주민들의 피폭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날 이영란 씨는 “길주군 피폭 문제는 길주군 전 주민의 문제”라며 “암 환자가 많아서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위암, 폐암 환자가 있고 한두달 있다 모두 죽는다”고 했다. 이어 “핵실험으로 인한 오염수가 흘러든 장흥천이 남대천 강물로 합류하는데, 이는 길주군 시민의 식수원”이라고 했다.
남경훈 씨는 “피폭 오염수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며 “동네에 관절염 환자가 늘어나고 장애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김순복 씨도 “사람들은 ‘귀신병’에 걸렸다며 무당을 찾아가곤 했다”고 했다.
이 대사는 대북 인도적 지원이 중요하나 북한 인권 개선의 범주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규명과 대북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우·좌의 문제로 양분돼 대척점에 놓인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북한 인권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로 대한민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정치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권이 기본권 문제로서 의식주 해결이 포함된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도 북한 인권 개선의 범주 안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했다.
다만 “지난 문재인 정권이 북한 비핵화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이 우려돼 북한의 인권 침해는 얘기하지 않는 수준의 대북 인도적 지원 논의는 지양돼야 한다”며 “실제로 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추진했으나 북한 정권에 의해 거부돼 좌초된 바 있다”고 했다.
이 대사는 효과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물품이나 식량, 의료 서비스 등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이 주민들에게 직접 돌아가도록, 유엔과 함께 전략을 구상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식량 배급이나 병원 설립 등 대북 인도주의 단체의 북한 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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