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간의 통합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한기총과 한교총 간에 모처럼 성사된 통합 합의를 두 기관 모두 공식 의결로 매듭지으려 했으나 부정적인 기류만 확인한 채 무산됐다.
한기총은 지난 7일 실행위원회와 임시총회를 잇따라 열고 ‘한기총·한교총 통합의 건’을 공식 의제로 다뤘으나 논의 끝에 향후 통합 여건이 조성되면 다시 추진하기로 결론이 났다. ‘잠정 보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두 기관 모두 통합이 ‘시기상조’란 걸 확인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통합의 동력이 다시 발휘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한기총은 지난달 16일 임원회 때만 해도 통합에 강한 자신감과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이틀 뒤 한교총 상임회장회의에서 한기총 내 ‘이단 문제’를 선결 과제로 들고나온 것이 결정타였다. 상대가 통합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이상 단독으로 추진하긴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선 것이다.
양 기관 통합추진위가 마련한 최종 합의안의 핵심은 명칭은 역사성이 있는 한기총으로, 정관은 한교총의 것을 준용하기로 한데 있다. 한기총으로선 명분과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고, 한교총으로선 명분 대신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기관의 대표끼리는 통합추진위가 내놓은 합의안에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명칭과 정관 문제가 큰 틀에서 정리된 마당에 최종 결의과정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양 기관 모두 공식 결의기구 소집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한교총 내 주요 교단이 회의 시작과 함께 이단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통합 합의안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한기총 내 이단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하자 이런 식이면 우린 빠지겠다는 교단도 있었다.
한교총 내 이런 분위기는 상대인 한기총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심지어 한교총 내부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이단 명단이 나왔다는 소문까지 돌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기총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는 임시총회 개회예배 설교에서 “저는 한기총 안에 이제 이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단 운운하면서 통합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 통합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한기총은 10여 년이 넘는 시간을 금품 부정선거, 이단 감싸기 의혹 등에 휩싸였다. 불법 선거 시비로 대표회장이 직무 정지되고 변호사가 대행을 맡는 비정상적인 일이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니다. 이런 전력으로 한국교회와 사회로부터 엄한 꾸중을 들었던 한기총이 새 지도부가 들어서며 의욕적으로 추진한 게 기구 통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개 속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한교총 내 일부 교단이 제기한 한기총 내 이단 문제가 과연 통합의 선결 조건으로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두 기관은 이미 명칭은 한기총으로, 정관은 한교총 것을 토대로 하기로 합의했다. 그렇다면 한기총 내 이단 문제가 더는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
한교총이 지목한 한기총 내 이단 관련 인사 중엔 단체로 가입한 이들도 이다. 이들은 두 기관이 통합해 한교총 정관을 쓰게 되면 가입이 자동 철회될 수밖에 없다. 한교총 정관은 단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로 지목된 일부 교단도 공식 의결기구인 상임회장회의에서 얼마든지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단 문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것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처음부터 통합에 진정성이 있었는지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두 연합기관의 통합 추진 배경에 한국교회가 하나 돼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 당위성이 한두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인위성에 묻힌 측면이 없지 않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자고 시작한 일인데 같은 보수 색채를 띤 한교연이 논의 대상에 빠진 것도 바람직한 구도는 아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상등이 켜졌다. 이대로 가다간 기독교인 수가 반 토막이 날 것이란 위기의식이 현실로 닥치고 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등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다.
당장 연합기관이 하나 된다고 모든 환경이 하루아침에 바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교회 분열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약화시키고 근본을 흔들리게 했다는 점에서 회개와 새로운 결단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연합기관 통합도 인위적인 물리력이 아닌,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마음의 소통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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