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총회 임원회가 9월에 개최되는 제108회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확정했다. 교단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명성교회 측도 부담을 느껴 총회에 재고 요청을 하는 등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나 임원회가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을 명성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최종 확정됐다.
통합 측의 9월 총회 장소 선정은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총회 임원회가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정한 건 지난 4월에 8차 임원회에서다. 그 후 임원회는 명성교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총회 임원회로부터 공문을 받은 명성교회는 당회를 열어 이 문제를 숙의한 후 임원회에 재고를 요청했다.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정한 건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하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라는 이유를 달았다.
명성교회가 난색을 표하자 임원회가 고민에 빠졌다. 명성교회 측이 왜 난처해 하는지 그 속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소를 다른 곳으로 변경하자니 몇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총회 기간 중 대규모 ‘치유·화해 집회’를 열기로 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통합 총회는 총회 둘째 날 1만 명이 모이는 ‘영적 대각성 성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명성교회로 장소를 정한 건 1만여 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흔치 않은 데다 ‘치유 화해’라는 주제에 딱 맞아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교단 안팎에서 갈등이 심화돼 온 세습 문제가 최근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된 것도 무관하지 않다. 통합 총회는 지난 2019년 제104회 총회가 명성교회 수습안을 결의했다. 뒤이어 지난 2월 김하나 목사의 대표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명성교회 손을 들어줬다. 부총회장 김의식 목사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세습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했다. 임원회로선 이점을 깊이 고려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미 지방의 여러 노회가 명성교회 주변에 숙박시설을 정했는데 그걸 취소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에도 있다. 통합 총회 산하에 전국 69개 노회가 있다. 목사·장로 총대 1500명 중에 지방에서 오는 총대만 어림잡아 1천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총회 기간중에 총회 장소 인근에서 숙박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그 많은 총대를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엔 한계가 있다. 노회마다 총회 장소에서 가깝고 좋은 시설을 선점하는 데 애를 먹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숙박 예약 전쟁이 재개된 건 규제 완화조치가 시행된 지난해부터다.
문제는 지방 대부분의 노회가 이미 명성교회 인근 숙박시설에 예약을 마쳤다는 점이다. 총회 임원회가 올해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정했다는 보도가 교단 기관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발 빠르게 움직인 탓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경우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통합 총회는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확정하면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그 과정을 설명했다. 어느 교단이든 총회 장소를 정하는 문제로 기자회견까지 여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소상히 설명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얘기다.
그건 교단 내부에서 명성교회를 총회 장소로 확정하기 전부터 끊임없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총회가 결의한 ‘세습금지법’을 위반한 교회에서 총회를 개최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거다. 통합 총회가 지난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이 법을 결의했는데 당시 총회가 열린 곳이 명성교회였다는 점도 논란을 부채질했다.
반대하는 측은 총회 중에 열리는 대형 집회를 개최할만한 장소가 명성교회밖에 없다는 임원회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말 그런 대형 집회를 열고 싶다면 총회가 끝난 다음에 다른 큰 교회를 빌려서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명성교회로 정한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통합과 합동, 고신 등 주요 장로교단의 총회 시기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 대 교단들은 총회에서 처리하는 의제가 많을 뿐 아니라 총대 수도 많아 장소를 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교회라도 대중교통 접근성과 숙박시설, 식당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가 만족스러우면 다른 하나가 걸리는 식이다.
그런데 통합총회 임원회가 올해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결정하면서 고려한 건 이런 기본적인 요건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세습금지법’ 문제로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총회가 정한 주제인 ‘치유와 화해’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런데 총회 장소가 명성교회로 정해지면서 가라앉는 듯하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는 분위기다. 이 점은 명성교회로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통합 제108회 총회 주제 ‘치유와 화해’가 시사하는 게 있다. 진정한 치유와 화해는 명성교회뿐 아니라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치유는 가슴을 여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한쪽 가슴은 열고 다른 쪽 가슴을 닫으면 치유는커녕 상처가 도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통합 총회가 진정한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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