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은퇴 시기와 관련해 각 교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고수하고 있는 만 70세 정년이 과연 적정 은퇴 시기냐 하는 것과 함께 은퇴를 둘러싸고 교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혼란이 더는 방치하기 곤란한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지적이다.
과거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이 목회를 중단해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사실상 ‘종신제’나 다름없었다. 오래전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을 보면, 정치 제4장 제4조 1항에 위임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終身)토록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종신제’였던 위임목사의 시무 연한에 제동이 걸린 건 예장 통합 측이 1969년에 70세 ‘정년제’를 시행하면서부터다. 합동 측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90년 총회에서 가결돼 1992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두 장로교단이 사실상 지금의 한국교회가 지키는 목회자의 은퇴 시기를 제도화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목회자 ‘정년제’를 한국교회에 처음 도입한 교단들이 요즘에 와선 반대로 은퇴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교단 내 거센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매년 9월에 열리는 총회 때마다 관련 헌의안이 줄을 잇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예장 통합과 합동 측의 경우만 놓고 보면 목회자 정년 연장 또는 ‘정년제’ 폐지는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번번히 총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사회 통념에 맞지 않고 목회자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목회자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나 교수, 일반 직장인 등의 정년이 아직 60대인데 반면에 목회자는 10년이나 많은데도 더 연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역지가 한정된 현실에서 정년을 늘리면 가뜩이나 임지를 구하기 어려운 젊은 목회자들이 더 어려워진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한 요인은 우리 사회가 이른바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며 건강나이와 기대수명이 늘어난 데서 찾을 수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70세는 신체적으로 노쇠기에 접어드는 나이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한참 더 사역할 수 있는 나이에 사역을 중단해야 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교단들의 속사정은 따로 있어 보인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교단들이 늘어나면서 은퇴 시기에 근접한 목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게 있다. 정년제에서 자유롭고 교단의 간섭이 비교적 덜한 교단이나 단체로 적을 옮기거나,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교단에선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속앓이만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교단과 목회자들의 이런 고민과는 아주 상반된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달 19일부터 7월 2일까지 목회자 총 7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49%가 ‘은퇴 연령 이전에 목회를 마치고 싶다’고 했다. ‘은퇴 연령 이후에도 또 다른 목회를 하고 싶다’(26%), ‘은퇴 연령(70세)까지 다 채우고 싶다’(25%)가 그 뒤를 이었는데 정년 전에 은퇴를 고려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는 건 분명 시사하는 게 있다.
여러 교단이 목회자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게 최근 한국교회의 분위기다. 과거에 주요 교단이 정한 ‘정년제’의 시효가 거의 다됐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작 목회자들이 정년 전에 목회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뜬금없는 듯하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이와 관련해선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앞서 실시한 다른 설문조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4일까지 목회자 총 704명에게 “목사님은 요즘 목회 활동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십니까?”라고 질문했더니 △무기력 21% △답답 17% △피곤 16% △막막 13% 등 부정적인 감정이 전체의 67%였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지만, 목회의 질이 그만큼 하락했다는 뜻이다.
목회자 70세 ‘정년제’는 성경을 토대로 했다기보다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 제도화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게 고치는 게 순리다. 교리나 본질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아니라면 탄력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 교단이 목회자의 은퇴에 대해 탄력적으로 제도의 변화를 꾀하고 거기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지금의 갈등과 혼란을 정리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앞서 설문조사가 말해주듯 목회가 고단하고 피곤할 뿐 아니라 막막하고 답답하게 느끼는 이들에겐 제도만으로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점을 각 교단이 세심하게 살피지 않고 제도의 변화에만 주력하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제도의 제도화란 결국 ‘양날의 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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