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
공감하는 힘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생활은 편해졌지만 힘들어 하는 이웃들에 대한 공감은 아주 낮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로 신음할 때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시어 구원하셨습니다. 욥이 재앙을 만나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피곤함을 뒤로하고 욥을 위로해 주려고 온 것입니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 옹기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습니다. 욥을 알아본 벗들은 소리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공중에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렸습니다. 욥의 슬픔에 대한 공감입니다. 욥의 벗들은 함께 울어주고, 아파했습니다. 적극적인 공감입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12:15)
여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욥과 함께 칠 일 동안 땅바닥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통의 현장에 함께하였습니다. 이보다 더한 우정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까지 욥의 벗들이 보여준 모습이 참다운 우정입니다. 욥에게 이러한 벗들이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입을 열어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고통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침묵의 연대로 함께하게 하옵소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로 위로한다 하면서도 실상 상처를 주는 일들이 허다했음을 돌아봅니다.
종종 이웃들에게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거라는 말을 쉽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까? 나는 그가 될 수 없습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말이 오히려 마음속 깊이 생채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참사가 날 때마다 힘들어하는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욥의 벗들처럼 아픔의 자리에 함께하면서도 말보다 오히려 기도와 침묵의 연대가 필요한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사랑의 시작도 공감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당한 이웃에게 말이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눈과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하며 공감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220장)
■ 연요한 목사는 숭실대와 숭의여대에서 교수, 교목실장으로 일했으며, 한국기독교대학 교목회 회장, 한국대학선교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기도시집 香〉, 〈주를 대림하는 영성〉, 〈성서다시보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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