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6일 목요일]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
전체 본문: 마태복음 26:6-75
읽을 본문: 마태복음 26:26-30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해설과 묵상
오늘 전체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6-75절은 다음의 사건들을 매우 생생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1) 베다니에서의 도유(anointing; 6-13절)
2) 가룟 유다의 배반(14-16절)
3) 유월절 식사에 근거(17-25절)한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 제정 장면(26-30절)
4) 베드로의 부인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31-35절)
5)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는 겟세마네에서의 기도(36-46절)
6) 예수님의 불법적 체포 장면(47-56절)과 산헤드린(공회)의 조작된 심문 과정(57-68절)
7) 자기 생존을 위해 저주의 맹세까지 동원하며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참담한 실패(69-75절).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간계, 가룟 유다의 배신, 예수님을 버린 제자들의 도망, 그리고 베드로의 거듭된 부인까지, 이 모두 참으로 암울하고 참담한 사건들이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죽음이 이들로 인해 발생한 하나의 안타까운 희생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읽은 주의 만찬 제정 본문(마26:26-30)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다음의 말씀이 그에 대해 확실하고도 직접적인 답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주의 만찬 제정 과정에서 예수님은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과 맞물려 있는 유월절(출12장; 13:15) 식사를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잔(cup)이 상징하는 바를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마26:28)로 명확하게 규정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이어지는 마태복음 27장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태복음 27장은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암시할 뿐 이를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죽음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바로 오늘 읽은 주의 만찬 구절(마26:26-30)입니다!
주의 만찬 제정 구절이 예수님의 죽음에 관련하여 여러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만, 특별히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첫째, 주의 만찬이 상징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위해 죽으셨음을 뜻합니다. 유월절 식사는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과 긴밀히 맞물려 있는 식사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출애굽)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뜻 깊은 식사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이 그저 최고의 선지자, 랍비 그리고 이상적(idealized) 인간에 그치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최고의 선지자요, 최고의 스승이시며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저 가장 기름부음 넘치고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죽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죽으셨음을 뜻합니다(마20:28; 27:54)!
둘째,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한 대속적 죽음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마태복음 26장 28절(“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와 목적을 계시합니다(마20:28; 히9장; 사53장 참조). 우리가 스스로의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데,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을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갈 3:13).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대신 치르셨기에 그를 주와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죄 사함이 주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입니다! 오늘 당신의 죄 용서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리신 주 그리스도로 인해 당신 안에 감격이 있나요? 십자가 복음과 죄 사함의 은혜로 인해 지금 당신의 영적 심장이 뛰고 있나요? 혹시 영적 심폐소생이 필요한 상태는 아닌가요?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인해 우리의 자기중심성이 거룩한 전복과 해체를 경험하는 이번 고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갈2:20; 롬8:13).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가 겸손히 십자가 밑에 바짝 엎드려 머물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항복(surrender)과 의존의 태도를 진정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 가운데 현재 삶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주님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을 대망케 합니다.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나라에서 주님과 새 포도주를 함께 마시게 될 그 날을 사모하게 합니다. 그런 뜻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에 관해 말하면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고전 11:26).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역사적으로는 약 이 천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은 지금 우리 실존에 있어 여전히 중심 사건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아울러, 주님의 죽으심이 사흘째 되는 날 영광의 부활로 이어졌고 또 예수님의 부활이 장차 있을 성도들의 부활을 담보해 주는 “첫 열매” 사건(고전 15:16, 20절)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장차 있을 그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게 만드는, 미래지향적 사건입니다. 약 이 천년 전에 역사의 한복판에 벌어진 예수님의 죽음은 시간적으로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역사의 중심 사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이 때가 되면 모두 쇠할 것입니다. 부귀, 영화도 다 소멸할 것입니다. 인기와 명예도 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역사의 종말에도, 그리고 영원토록 굳게 설 것입니다(단7:14; 계21-22장). 잠시 있다가 사라질 허무한 실체가 아니라 영원한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에 ‘오늘’이라 불리우는 이 귀한 시간을 내어 드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넷째, 주의 만찬은 제자 공동체가 예수님의 가족 그리고 서로의 가족임을 일깨워 줍니다. 원래 구약의 유월절 식사는 가족 식사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친 가족과 함께 모여 나누는 식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유월절 식사를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누가는 이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기록합니다. “내[예수님]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예수님은 이 가족식사(유월절 식사)에 기반하여 주의 만찬을 제정하십니다. 그런 뜻에서, 주의 만찬은 제자된 우리가 예수님의 가족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마12:49-50).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서로의 가족입니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가족됨과 연합됨을 일깨워 줍니다(고전 11:17-34)!
다섯째, 주의 만찬이 상징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희생과 섬김의 궁극적 본을 제시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시기 앞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따라야 할 희생과 섬김의 궁극적 본입니다(마20:28). 물론, 우리가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방식으로 순교한다 해도 우리 죄를 티끌만큼도 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따라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희생하고 섬기고 손해보더라도 주를 위해, 이웃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여섯째, 주의 만찬 제정 장면은 우리에게 격조 있는 감사의 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이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는 과정에서 잔을 들고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의 일부였던 감사 기도와 같은 맥락에 머문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마26:27) 예수님은 임박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아버지께서 이루실 일에 대해 감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고 어려움이 종식될 때 ‘할렐루야!’를 외치며 감사합니다. 물론 당연히 그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희생과 고통과 죽음까지 끌어안으며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 의미심장한 만찬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감사는 우리들이 드리는 감사의 수준 향상을 요구합니다.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직장에서 어려운 상황이 개선되고 문제가 해결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주의 나라가 확장되고, 가정과 공동체가 회복될 때, 우리는 지속되는 고통과 손실의 경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나요? 당신의 희생과 고난을 통해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살아나며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된다면, 손해 보고 희생하는 가운데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나요? 우리가 격조 있는 감사에 있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길 바랍니다.
주의 만찬 제정 본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소중한 진리를 가슴에 품고 비록 소소하게나마 이를 몸소 살아내는, 의미충만한 고난 주간 되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한 줄 기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제 영적 심장이 다시 뛰게 하시고, 주님 가신 섬김과 희생의 길을 오늘 감사하며 따르게 하소서.
** [묵상 심화를 위한 팁] 오늘 읽은 본문에 추가하여 전체 본문(마26:6-75)을 읽으시면 오늘 읽은 본문에 대한 이해가 심화됩니다. **
* 본 고난주간 묵상 가이드는 이충재 박사와 공저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요단출판사, 2021)에서 필자가 저술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개정, 증보했다. 출판사 및 공저자의 허락 하에 재사용함을 밝힌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403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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