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엔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야”
축구선수 강수일(안산 그리너스FC 소속, 36) 씨가 36년 만에 찾은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다. 강수일 씨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던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K리그를 떠난 지 2199일 만인 지난 2021년 6월 13일 한국 무대 복귀전을 치렀다. 이날은 강 씨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하루였다. 바로 미국인 친아버지를 한국에서 상봉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강 씨가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친아버지 갈렌 존스 씨는 현재 미국 앨라배마주 소재 버밍엄 신학대학교에서 교수이자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강수일 씨는 친아버지의 부재로 유년기 시절 생긴 마음의 상처를 고백했다. 그는 “주위에서 아버지 얘기만 나와도 화가 났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다”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곱슬머리·검은색 피부색 등이 싫었다”고 했다.
강 씨 친부인 갈렌 존스 목사는 동두천 주한미군 부대 소속 군인이었다. 당시 강 씨 어머니와 교제했던 갈렌 존스 목사는 복무 기간 만료로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강 씨 어머니와 미국에서 함께 살고자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1986년 한국으로 귀국해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가 강 씨 어머니는 갈렌 존스 목사로부터 아들 강수일을 임신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갈렌 존스 목사는 자신과 함께 미국에서 살기를 거절한 강 씨 어머니를 뒤로 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강수일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면서, 예절을 배우고 열정을 불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를 찾고 싶은 갈망도 커졌다고 했다. 강 씨는 “20살 프로축구 구단에 입단하면서 신체적 능력을 주신 아버지께 처음으로 감사하게 됐다”며 “이후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거치면서 30대 중반에 이르자, 죽기 전에 아버지를 꼭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때마침 강 씨는 출석하는 동두천 소재 ‘월드비젼교회’(담임 김영철 목사)의 한 교우로부터 ‘유전자 검사’ 권유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부자 상봉이 시작됐다.
그리고 강수일 씨는 미국 유전자 검사 기관에 자신의 DNA 샘플을 보낸 지 3개월 만에 희소식을 듣게 된다. “당신과 DNA가 일치한 사람을 찾았다”는 것. 미국에서 약 70개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 기관 중 강 씨와 갈렌 존스 목사는 우연히 같은 곳에서 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강 씨에 따르면, 갈렌 존스 목사도 자신의 혈통을 알고자 유전자 샘플을 기관에 미리 등록해둔 상태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이미 결혼을 한 갈렌 존스 목사는 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터라 “나는 아들이 없는데, 혹시 나한테 사기 치는 것 아니냐”며 기관 관계자에게 유전자 재검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갈렌 존스 목사는 주한미군 복무 중 강수일 씨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강 씨로부터 받고 “수일은 내 아들”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6월 13일 한국에 입국한 갈렌 존스 목사는 강 씨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친부는 저를 꼭 안아주시며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 우리가 만난 데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것이야’라며 계속 되뇌었어요.”
갈렌 존스 목사의 아내 캐시 존스 씨도 강수일 씨를 처음 대면하자 “아버지는 자식을 너무 원했단다. 너는 우리 인생에 전부”라며 울었다고 한다. 강 씨는 “자녀가 없었던 친아버지는 어쩌면 나의 존재를 몰랐겠지만, 그동안 하나님께 자녀를 놓고 기도했고, 그 기도 응답이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수일 씨는 현재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2명으로 늘었다. 한국에서 친·양 부모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갈렌 존스 목사를 한국에서 상봉한 지 1년이 흐른 지난해 6월, 강 씨에게 새로운 희소식이 생겼다. 바로 아들 ‘강다니엘’이 태어난 것. 이 소식을 들은 갈렌 존스 목사는 손주를 보고자 ‘월드비젼교회’로 깜짝 방문했다고 한다. 강 씨를 비롯한 3대 부자는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는 등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껴요. 이것이 내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교회와 방탕함 사이에서 방황하며 굴곡진 축구 인생을 살아왔어요. 목사가 되신 친아버지를 이렇게 만나 뵈니, 하나님께서 이런 ‘나’임에도 지금까지 꼭 붙잡아주신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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