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11회 학술발표회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11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줌 영상 캡처

한국기독교역사학회(이재근 회장)가 4일 오후 제411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으로 개최했다. 이날 먼저, 홍승표 목사(본 학회 연구이사, 아펜젤러인우교회 담임)는 ‘강원 동해‧삼척지역 초기 교회사에 대한 재검토: 1910년대 영동남부의 초기 교회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홍 목사는 “강원도는 초기 개신교 선교의 주무대가 되었던 경인지역에서 위도상 동일선상에 있으며, 한반도의 중부권에 위치해 선교사들이 함경도와 평안도, 충청도와 경상도 등지를 순행할 때 종종 탐색하는 경유지이자 주요 선교대상지로 여겨졌다”며 “특별히 강원도 영동지역은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으나 험준한 산악지형에 가로막히고 교통 인프라의 불비로 접근이 어려웠으며, 이러한 이유로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늦은 복음 전파의 내력(來歷)을 갖는다”고 했다.

또한 “타 지역에 비해 적은 인구와 남북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촌락과 도시가 형성된 지리환경은 선교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인식된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 중에서도 영동 남부권역은 위로는 캐나다장로회와 미남감리회의 선교 거점이었던 원산으로부터도 가장 떨어져 복음의 접촉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으며, 아래로는 대구와 안동이라는 경상북도지역의 미북장로회 선교거점으로부터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가로막혀 한반도 전체의 개신교 선교 지형도에서 제도적, 인적, 물적 지원으로부터 가장 소외된 불모지와도 같은 곳이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잘 훈련된 토착전도자들의 의지와 애정이 없이는 선교활동과 교회 설립이 녹록치 않은 등잔 밑과 같은 땅이었다”고 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11회 학술발표회
홍승표 목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줌 영상 캡처

그는 “영동남부지역 초기 교회 현황을 살펴본 결과, 삼척(성내리)교회·임원진교회·부호리교회가 삼척지역에서 형성된 초기 교회들었다”며 “그러나 역사의 노정 속에서 부호리교회와 임원진교회는 그 역사의 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이어 “다만 삼척교회는 그 자리를 잃지 않고 꿋꿋이 그 명맥이 이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며 “1911년 노블의 보고를 통해 그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나고, 이듬해 연회에서 통계를 통해 보고된 삼척의 초대 교회들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교회가 삼척교회라는 사실이 일제 총독부가 실시한 포교규칙의 조사 결과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 현재까지는 기존의 1912년 창립설을 수정하고 1911년에 교회가 존재했다는 점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선교사 문서와 총독부 문서를 교차 검증한 바 문헌적으로는 성내리교회(삼척교회)가 동해・삼척지역의 첫 교회임을 실증했다”며 “현재 공식적인 문헌에서 삼척교회의 1911년 설립설을 뒷받침하는 문헌은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1969년 간행한 「사진연감」”이라고 했다.

이어 두 번째로 ‘일본 통치 말기의 한일성공회 관계; 세실 주교로부터 구도 주교까지”라는 주제로 발제한 마츠야마 켄사쿠 박사(松山健作, 연세대 박사과정)는 “조선성공회는 1890년 코프(Charles John Corfe, 1843-1921)가 상륙함으로써 시작된 조직이다. 조직의 특질로서 전례를 중시하는 앵글로 가톨릭주의(Anglo-Catholicism)에 입각한 조직이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통치 말기에 교회는 탄압 대상으로서, 국책을 따르지 않는 존재는 ‘비국민’(非国民)으로 간주되었다”며 “물론 그들은 군국주의에서 국가를 찬양하며 살아야 하고, 조선인들에게 지도자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존재였다. 그 부분에서는 지도층이 일본제국이 ‘신앙의 자유’를 준다고 해석하면서 나라에 충성을 표현한 바를 분석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합동, 주교 안수 문제에 대해 조선성공회의 재조일본인 교역자가 중요시하고 판단 기준으로 한 것은 교회정신인 앵글로 가톨릭주의였다”며 “교회 합동에 관해서는 합동을 진행하는 일본성공회를 비판하고 ‘사도성’의 상실 가능성에 경종을 울렸다”고 했다.

또 “구도 주교 안수 때에는 조선성공회를 일본성공회에 합병하는 길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교회정신을 지키기 위해 조선성공회의 ‘독립성’ 확보에 노력한 것”이라며 “즉 그것은 ‘주교제(主教制)’라는 사도로부터 계승하는 직제를 지키는 일이 조직으로서 중용했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이러한 점에 관해서는 정치적 관점에서만 검토가 이루어져 왔다”며 “그러나 교회정신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함으로써 전시하에서 조선성공회가 선택한 행정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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