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미국으로 이민 온지 만 31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무료하고 외로운 이민 생활을 자동차로 미국 곳곳에 여행하는 재미로 이겨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삼 년간은 펜데믹 사태로 그런 재미를 즐길 여유가 전혀 없었는 데다, 실은 인터넷 사역을 시작한 2003년 이래로 연말연시에는 항상 바빠서 여행 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펜데믹이 조금 안정되었고 백신도 4차까지 빼놓지 않고 맞았으니 무조건 모든 일 내려놓고 아내와 둘이서 인근 애리조나주에 며칠 다녀왔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제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때 매년 12월 31일이면 꼭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부산에서 경주로 가셔서 1월 1일 새해 아침을 토함산의 일출로 시작하셨습니다. 삼남삼녀 여섯 자녀를 키우시느라 지난해의 힘들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새해의 계획을 세워서 함께 기도하신 것 같습니다.(그때는 불신자였지만...) 마침 올해 마지막 주간의 여행인지라 당시의 부모님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두 분의 크신 사랑에 제대로 보답은커녕 불효만 했던 잘못을 회개했지만 이미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안타까운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님을 만나 뵙게 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세수하다가 거울 속에서 아버님을 뵌 것입니다. 제 얼굴이 70대 당시의 아버님 얼굴과 똑같아진 것입니다. 물론 육신만 아버님을 닮았을 뿐 생각과 행동은 아버님의 발등상에도 못 미칠 것입니다. 제가 제 부모님에게 품고 있는 존경과 애정을 제 두 아들도 지금 저에 대해 비슷하게나마 가질 수 있을까 헤아려 보았더니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그들에게 제 아버님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은 저희 사는 곳 근처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워낙 큰 나라인지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대체로 차로 하루 꼬박 가야만 합니다. 펜데믹 이전만 해도 며칠을 그렇게 운전해도 까딱없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피곤했습니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처럼 비춰 보였던 제가 어느새 연말마다 여행을 가셨던 아버님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것입니다. 세월은 살 같이 빨리 흐르고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저도 어쩔 수 없이 무력하고 연약한 노인이 된 것 같아 조금 서글퍼졌습니다.
한 지인에게서 70대가 되면 몸 상태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실토 아닌 푸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쳐왔었으나 제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확인했습니다. 아직도 제 속에 깎아내어서 버려야 할 교만과 아집이 많이 남아 있음을 하나님이 꿰뚫어 아시고 이번 연말 여행으로 이끄신 것 같습니다.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70대의 몸 상태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자기 몸도 쉽게 따라와 주던 시절이 거의 끝나고, 가만히 있으면 늙어가는 몸에 생각마저 함께 늙어가는 수밖에 없는 생체학적 분기점인 것 같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창조 경륜에 속할 것이므로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면, 정확히 말해서 천천히 늙으려면 가만히 주저앉아 있지 않고 몸과 마음을 계속 열심히 사용하는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몸과 마음 둘 중 하나만 건강해도 어떤 힘든 일도 감당할 수 있지만, 늙어선 둘 다 건강하지 않으면 일상생활마저 힘에 부대낄 것입니다. 더욱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여서 정신을 맑게 유지하고, 몸을 조금이라도 망치는 일을 완전히 삼가야 할 것이며, 규칙적인 운동을 하루라도 빠트리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껏 비교적 성실하게 그렇게 해왔으나 이번 여행을 통해 주님의 경고를 받았으니 앞으로는 사역보다 건강 챙김에 더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나마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제 집사람이 저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최고의 복을 받은 것 같아. 다른 분들은 은퇴하고 사역할 기회가 없어서 힘들어하는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섬길 사역이 있고 또 갈수록 더 활발해지니 그런 축복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끝까지 당신을 붙들어주실 꺼야!”라고 말입니다. 막상 최고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는데 오직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충성하는 길 하나라고 아내가 깨우쳐준 셈입니다. 저도 실제로 홈피 사역에 매진하고 있으면 피곤한 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정신은 더 맑아집니다. 이런 차원에서 홈피의 수많은 회원과 방문자님들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타민인 셈입니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행하던 일을 그만두는 순간 급작스럽게 늙어버린다고 합니다. 죽지 않으려면 계속 숨을 쉬면 된다는 우스개처럼, 장수의 비결은 꾸준히 일하고 그 일이 끊어질 양이면 빨리 다른 일을 찾아서 행하면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루실 일이 남아있다면 저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육신과 정신의 건강도 그분이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나이 80-90이 되어도 몸이 노쇠해져도 얼마든지 정신에 맞추어서 따라올 수 있게끔 말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4-16)
2022/12/31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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