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만으론 안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매주 목요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1인 시위와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도회 등 대규모 거리집회에 동참하는 목회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회의사당 앞 1인 시위는 지난 9월 29일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그 후로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가 시위에 동참했다.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도 이영훈 목사를 비롯해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름이 알려진 목회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거리에 나서는 예는 극히 드물다. 큰 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활동 외에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교회 밖 행동이 자칫 특정 사안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으로 비쳐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소신에 따른 행동이라도 예배당이나 강당 등의 공간이 아닌 야외나 거리는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에겐 그리 친숙한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름있는 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거리, 그것도 대한민국 입법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고, 대통령실 인근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젠더’ 이념에 오염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의 폐기라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여건과 환경을 따질 여유가 없는 절박성이 내포돼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해 도심에서 거리집회를 갖는 단체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 중에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 동성애동성혼합법화반대전국교수연합(동반교연) 등은 거의 단골이다.
그런데 이들이 서울과 전국 대도시에서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목소리가 국민의 마음을 얼마만큼 움직이고 있을까. 거리집회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로 확산되기까지는 매우 제한적이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한쪽에선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데 그 절규가 사회에 커다란 반향으로 형성되지 못한다면 그건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커다란 장벽이 만들어지기까지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언론의 특정 프레이밍 작동이라 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반 언론들은 진평연을 비롯해 거의 5백 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닫은 지 오래다. 지난 13일 주일에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3만여 명이 모여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도회를 열었지만, 교계 언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이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동성애 폐해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금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동성애 문제에 관한 한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보도 프레이밍의 위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진평연 상임대표인 원성웅 목사는 지난 6월 9일 ‘차별금지법과 언론의 불공정성’ 주제 세미나에서 자신이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에 응했던 소회를 털어놓았다. 원 목사는 “3월 중에 공영방송 인터뷰에 임했는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내용 대부분은 삭제된 채 차별금지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결론에 맞춰 악의적으로 편집됐다. (방영된 프로그램이) 개신교회는 소수자 인권을 아예 무시하는 집단 정도로 폄훼됐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이런 정도는 현장에서 동성애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인터뷰한 내용이 아예 통편집돼 사라지거나 짜깁기식으로 왜곡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하면 무조건 극우 또는 꼴통 보수로 간주해 아예 귀를 닫고 있는 우리나라 방송과 언론의 이런 태도는 공정 보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현실에서 특정 교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목회자들이 일주일에 단 하루 고작 한두 시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하는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반대로 주일 오후에 목회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모여 고함을 지르는 것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기보다는 거부감으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란 말이 있다. 세상에 워낙 말이 넘치다 보니 나온 말이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 때론 웅변이, 또는 침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목회자들의 국회 앞 릴레이 시위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조회 수가 수십 만에 달할 정도로 높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게 한 예가 아닐까 한다.
그동안 이름이 알려진 목회자들은 칭찬보다는 비판과 구설수에 대상이 되곤 했다. 개인의 윤리적인 비위가 문제가 된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교회를 시무하는 목회자의 행동 영역 자체가 주는 무게로 인해 몸을 사린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논란을 피하려는 의지가 더 강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목회자들을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이 거리로 소환하고 있다. 아니 하나님이 혼란한 시대를 직시하라고 그들을 불러내신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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