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낙엽이 다 떨어지지 않은 늦가을 서울 광나루에 위치한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운용 교수)의 한 북카페에서 낭독회가 열렸다. 날이 어둑해진 저녁, 북카페는 장신대 주기철기념관의 옆 언덕배기에 위치한 따스한 조명이 새어 나오는 곳이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 낭독회의 기획자인 출판사 ‘르비빔’의 김효진 편집장은 낭독회에 오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맞이하며 인사를 전했고, 주 낭독자인 오르가니스트이자 클래식아티스트인 임에스더 작가는 한 켠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 조용히 낭독을 준비하는 듯했다.
이번 낭독회의 모든 글은 대림절을 위한 묵상을 위해 만든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책의 제목은 ‘동경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for 40days)이다. 다소 뉘앙스가 묘한 이 표현은 가속화되는 물질문명 속에서 자신이 가지진 못한 것과 끝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자신을 온전히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을 동경하며 그리워하는 현대인을 비유한 제목이다. 또한 삽입된 큐알코드를 통해 7곡의 찬송가를 오르간으로 연주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연주자가 앞서 소개한 임에스더 작가이다.
임 작가는 낭독회를 시작하며 “아버지의 글과 저의 연주가 새로운 옷을 입고, 조금 어리고 젋은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영광이다. 아버지가 오시면 좋았겠지만, 연로하셔서 오실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읽는다고 생각하며 낭독하겠다.”라며 짧은 인사말과 함께 바로 낭독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낭독은 임 작가의 글로 제목은 ‘작은 방’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는 나의 안식처였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많은 책과 알록달록한 메모지들, 연필들, 예쁜 수첩이 가득했다. 그 공간은 내게 꿈의 공간이였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서 한참을 조용히 보내곤 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조용한 여행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알고 내 꿈을 찾고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혼자만의 고요한 묵상이자 피정이었다.”
모든 어른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동화같은 장소가 있을 것이다. 임 작가의 의식 속에는 아버지의 서재가 내면 깊이 피정의 장소로 자리잡은 듯했다.
그렇다.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낭독자 임에스더 작가의 아버지이며 모새골 공동체를 창립한 임영수 목사이다. 임영수 목사는 영락교회에서 시무하기도 했던 장로교의 원로로 한국교계가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목회자들 본인도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허한 목회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영성 목회’를 추구하여 ‘고요한 예언자적 외침’을 들려주는 목회자이다.
책의 프롤로그에 실린 이 글은 어린시절의 임 작가가 아버지인 임영수 목사의 서재에서 느낀 감정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그녀의 영원한 작은 방이다.
오르가니스트이기도한 임 작가는 독일의 작곡가 바흐(J. S. Bach)의 유명한 곡 ‘예수, 인류의 소망의 기쁨’(Jesus, Joy of Man’s Desiring)을 오르간으로 연주하여 책에 영상으로 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소망’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 ‘Desiring’은 오히려 ‘욕망하는’ 혹은 ‘갈망하는’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 하겠다. 인류를 우리의 잘못된 ‘욕망’으로부터 구원하셔서 자족하게 하시는 이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임 작가는 “클래식 음악이 바흐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을 돌아서 다시 바흐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책의 낭독은 그녀의 바흐 연주와 함께 곁들이면 좋을 듯하다.
임 작가가 낭독한 다섯 편의 글들 중 두 편이 ‘자족’에 관한 글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기 연민, 도피, 거짓된 핑계, 궁리, 안일의 잠에서 우리를 깨웁니다. 그리고 처한 현실에서 생의 의미와 목적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선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능력 주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짓, 탐욕, 비교의 삶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현재 자신의 삶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게 합니다. 그것의 유일성, 고유성을 깨닫게 합니다.
사람들이 자족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 그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주어졌음에도 결코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비교, 탐욕은 우리의 필요를 자꾸 잘못 알게 합니다.”
그의 글은 성경말씀으로 도배하여 신앙을 과시하거나, 선동적이거나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도 않는다. 쉽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성마르게 정죄하지도 않는다. 단지 부드럽게 직면하게 한다.
그는 그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침참하여 고요히 자신을 말씀에 비추게 할 뿐이다.
임 작가의 낭독 중 ‘자족을 주시는 분’에서는 이런 글이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으로 비교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조장하므로, 자족하며 살 수 없게 만듭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언제나 상대적으로 평하를 하도록 만듭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낫다고 생각될 때 지나친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러한 우월감은 허세적인 것이므로 진정한 자족감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못하다고 상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기 비하 가운데서는 자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깨달음이지만, 항상 좌우로 치우치는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그래서 주님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이어진 글은 “이처럼 비교 가운데서는 언제나 허상을 보기 때문에 허상에 의해 희비애락을 갖게 됩니다. 허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자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듭니다.”이다.
심지어 필자를 포함한 많은 현대의 크리스천들도 이런 헛된 허상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자족은 언제나 하나님과 사귐의 삶을 배워 가는 데서 가능합니다. 자족의 삶은 피상적이지 않고, 본질을 추구해 가는 데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자는 자족이 억압적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부드럽게 교훈하는 듯하다.
낭독회는 임 작가가 낭독한 다섯 편의 글 외에, 회중 가운데 두 명의 독자가 각각 1편씩 낭독 후 끝마쳤다.
그중 한 편의 낭독자는 장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낭독회에 대한 소감에 대해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듣는 가운데 ‘구도자의 삶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영수 목사님의 어느 영상에서 자신도 구도자의 삶을 끝내거나 멈추지 않은 것을 긍지로 여기신다고 얘기하시는 것을 봤다. 이 묵상집을 읽으면서 임영수 목사님의 영성이 구도의 끈임없는 진리 추구를 향한 분투에서 녹아져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르비빔 출판사의 김효진 편집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책을 기획한 취지에 대해, “대림절을 준비하며 영적인 독서가 일으켜지고 우리의 삶에 공간이 마련해지길 원한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끽하며, 고유한 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영성의 삶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 ‘그저 공간을 전해 주는 것’에 대해 종종 언급했다. 특정 신앙을 강요하거나 인위적으로 영성을 일으키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 즉 영성의 빈 공간을 주님께 내어드려 고요함 속에서 깊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로 들어가는 것을 설명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 책에 대해 한 독자가 했던 말을 소개했다. “일반 묵상집도 그렇고 신앙도서, 제자훈련 등의 책들은 짧은 시간에 급속하게 회심을 일으키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저 공감만 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내용은 너무나 깊이가 있다.”라며 “한 분의 피드백이었지만 참 진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녀는 ‘당신에게 예수님이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에,
“너무나 많은 게 떠올라서 한 가지만 얘기하면, ‘르비빔’은 시편 65편에 나오는 단어이다. 내가 고난 중에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진흙이 물에 젖어 있고 나무에서는 비가 그쳐서 물이 떨어지고 있고 하늘은 지금 막 개어서 햇빛이 ‘쨍’하는 장면이었다. 바닥은 커다란 코끼리 발자국 것들이 움푹 움푹 패여있고, 땅은 진동하고 있었다. 나도 당황스러우리 만큼 생생한 꿈이였다. 그 꿈에 대해 고민하던 중 나도 모르게 성경책을 넘겨보게 됐다. 그때 시편 65편이 명확하게 그 꿈의 장면을 해석해 줬다. 나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고 계시고, 함께하시고 희망을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 꿈에서 작은 새싹이 다큐멘터리처럼 계속 자라는 장면도 있었다. 이 새싹이 해석이 잘 안됐었다. 그런데 시편 65편에는 나온다. ‘복된 새싹’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새싹에 하나님이 단비를 주시나이다’. 단비가 바로 히브리어로 ‘르비빔’이다.
그런데 내가 임영수 목사님의 원고를 받고 이것을 다듬는 중에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에서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또 한 번의 영적인 깨달음이랄까, 영적인 감동이 왔다.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한순간도 똑같지 않고 계속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과거의 실수든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힘들었던 시간도 다 지나갔구나, 계속 우리는 새로워질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욱더 이 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런데 이 경험은 본서에 이어 출간된 두 번째 책인 사순절 묵상집 ‘구도자의 길에 접어든 이들에게’를 준비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사순절 묵상집의 주제는 ‘고난’이다. 인생에 있는 고난과 예수님을 연결한다. 고난이 왜 성취를 위한 것인지, 피상적으로만 기복적으로만 갖고 있던 신앙이 어떻게 하면 실존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예수님이 인간의 실존을 어떻게 바꾸셨는지를 임영수 목사님이 매우 체험적인 글을 써 주셨다.
그녀는 그러면서 “이 책이 누군가의 삶을 좀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속 도와주시면, 다음 책을 낼 수 있을 만큼만 성장시켜 주시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도한다 하나님, 다음 책을 낼 수 있을 만큼만 도와주세요, 매출도 그렇고...
이것(꿈)이 없었으면 용기를 못 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었고, 당시 재직한 안정적인 출판사를 그만 두는 그 모험... 두려울 때마다 다음 걸음을 갈 수 있게 사인을 계속 주셨다. 그래서 르비빔이 시작될 수 있었고, 일년을 그렇게 보낼 수 있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쓴이 임영수 목사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는 영성가이며 구도자이다. 한국의 개신교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영성공동체 모새골(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골짜기)를 설립하여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되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있다. 더불어 많은 저서와 강의를 통해 창의적인 삶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의 현존앞에 머무르는 시간과 산책은 임 목사의 하루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임 목사의 작은 소망은 두 손자와 함게 언젠가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연주자 임에스더 작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임 작가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클래식 음악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음악 선생이자 ‘클래식 아티스트’이다. 더불어 가끔 글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종이와 연필을 사랑하는 작가이다. 언제나 꿈꾸기는, 예술과 음악을 통해 모두에게 작은 행복을 오래오래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그러한 꿈을 실현해 온 공간인 ‘클래식예술문화원’과 ‘킨더북스’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르비빔 출판사의 김효진 편집장은…
장신대 기독교교육과(BA, MA)를 졸업하고 기독교 출판사에서 1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은 1인 출판사 ‘르비빔’을 만들어 운영 중이며 신대원 1학년 새내기이기도 하다. 영성에 관한 글에 관심이 많은 김 편집장은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피상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참된 영성의 깊은 우물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문서선교사’이다. 하나님은 물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담은 책으로 임에스더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지속적으로 책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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