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다보니 기독교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면서 가만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대교회 이래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성개방적 풍조를 통제하였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기독교 사회는 조금씩 성에 개방적이 되어갔다. 반드시 성문화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이런 사회 문화적 타락에 대응하여 15세기에는 종교개혁이, 17세기에 경건주의와 청교도 정신 등이 나타났고, 18세기부터 복음주의적 “대각성”(Great Awakening) 부흥운동이 나타났다. 즉 믿음 깊은 크리스천들은 “때를 따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기독교를 살아있는 신앙으로 회복시키려는 열정을 표현하였다. 이를 기독교 부흥(revival)이라고 한다. 이는 복음주의(evangelicalism)와 나란히 발전하였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18세기의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 내에서 등장하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 “보통 사람들을 위한”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이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부흥운동은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대개 집회로 나타났다. (집회는 교회당에서, 들판의 대형천막에서, 광장과 운동장에서 열렸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라디오나 TV로 방송되었다) 여기서 설교와 찬양과 금식과 기도와 회개와 안수가 있었다. 폭발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회심(conversion)하였다. 이 회개운동은 당시 해당 지역과 국가 뿐 아니라, 거대한 파도가 되어 21세기까지 인접국가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부흥운동은 우리나라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자료에 의하면 복음주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신앙사상은 ① 청교도의 칼빈주의, 즉 개인적 성찰 및 회심을 강조하는 신앙정신, ② 장로교의 교리적 정밀함 및 프로테스탄트 정통성, ③ 17세기 루터교 경건주의(pietism)의 따뜻한 영성과 모라비아 형제단의 신앙형태, 등이라 한다. 그리고 17세기 퀘이커로부터 크리스천의 완전함(perfection)에 대해 배웠다.
1730년대에 제일차 대각성(Great Awakening) 운동이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복음주의 부흥(the Evangelical Revival)이라 부른다. 당시 부흥을 이끈 설교가로서는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 영국의 조지 화이트필드, 그리고 죤 웨슬리가 있다. 화이트필드와 에드워즈가 설교한 미국의 13개 식민지에서의 순회 부흥집회에서 “부흥의 불길이 불붙여졌다.” 설교, 기도, 금식과 더불어 수천 수만명의 참석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회심하였다. 설교자들은 의식과 전통보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개인적 구원의 확신과 거듭남(new birth), 거룩함과 경건과 헌신을 강조하였다. 미국의 흑인들도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다.
이차 대각성운동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기 사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감동적 설교는 수많은 사회개혁운동도 자극하였다. 이 부흥운동은 미국에서 남북전쟁 후 정치사회적 안정과 관련 사회개혁으로 인도하였다. 수많은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도 Le Réveil(부흥, 각성이라는 의미) 운동이 1814년 스위스 개혁교회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로 퍼져나갔다. 덴마크에서는 그룬트비가 부흥운동을 이끌었다.
제3차 대각성운동도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대표적 설교가로서 드와이트 무디, 찰스 스펄전, 중국으로 간 선교사 허드선 테일러 등이 있다. 19세기 말 한국(조선)으로 온 선교사 언더우드, 스크랜튼 등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904–1905 년간의 웨일즈 부흥운동은 20세기 최대의 부흥운동으로, 곧 전 영국, 북구 국가들, 및 북미로 퍼져 나갔으며, 선교사들을 통해 인도,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퍼졌다. 미국의 경우 1906년 로스안첼레스 아주사거리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이 있었고, 조선에서 1907년 세계사적인 평양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부흥운동은 지속되어 1920년대 설교를 라디오로 방송하는 부흥집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당시는 일차 성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학자에 따라 1960-1970년대 빌리 그래험 목사의 영향으로 제4차 대각성운동이 있었다고도 한다. 이 부흥운동으로 보수적인 교단이 급성장하였고 정치적으로 강해졌다. 필자는 이 각성운동을 당시 2차 성혁명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으로 생각한다.
1907년 평양 대각성 부흥운동에 대해, 하나님의 한국인에 대한 사랑의 섭리로 알고 감사한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이후 일제강점, 태평양전쟁, 신사참배, 6.25동란 등등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1960년대 제4차 대각성 부흥운동에 동참함으로 우리나라에 곧 밀려들 성혁명적 문화에 대비하게 하신 것으로 믿는다. 21세기 지금 우리나라에 복음주의 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간절히 기도한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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