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필도 목사 천국환송예배가 25일 오전 부산 수영로교회 은혜홀에서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및 수영로교회 장(葬)으로 드려졌다.
예배는 박정근 목사(부산성시화 이사, 영안교회 담임)의 사회로, 허원구 목사(부산장신대 총장, 부산성시화 고문)의 기도, 사회자인 박 목사의 성경봉독, 수영로 연합찬양대의 찬양,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의 설교, 회고 영상 시청, 김영식 장로(수영로교회 시무)의 고인 발자취 회고, 특별 영상 시청, 김종혁 목사(울산명성교회 담임)와 김상곤 목사(군목 동기)의 조시 낭독, 김종호 장로(수영로교회 은퇴)의 조사, 조가, 유족인사, 배광식 목사(예장 합동 총회장)의 축도로 드렸다.
◆ “무릎으로 황소처럼 일하셨던 분”
‘복된 삶 복된 죽음’(계 14:13)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상복 목사는 “우리는 인간이기에 슬퍼한다. 그러나 우리의 슬픔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슬픔이 아니”라며 “슬픔 속에도 평화가, 찬양이, 기대와 소망이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죽음은 슬픔이고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주 안에서 죽은 자에겐 복이 있다. 죽음에도 복되지 않은 죽음이 있고, 복된 죽음이 있다”며 “정 목사님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다. 주님 안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산 사람의 죽음은 복 되다. 그 죽음에는 쉼이 있다. 영원한 쉼이다.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쉼”이라며 “축복된 죽음이 있다는 걸 알고 살아야 한다. 그런 죽음을 우리가 이해하고 살 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정 목사님은 황소처럼 일했고 무릎으로 일했다. 목사님으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다”며 “구원받은 자들이 목사님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되었다. 그들이 일어나 걷고 뛰면서 다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게 정 목사님은 복된 삶을 사시다가 복된 죽음을 맞으셨다”고 전했다.
◆ “베푸신 사랑과 배려 잊을 수 없어”
설교 후에는 故 정필도 목사가 지난 3월 21일,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했던 ‘마지막 유언기도’가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그 기도 내용은 아래와 같다.
“더 크게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적당히 생각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서 지난 과거의 살아온 것보다 열 배 이상 열매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더 놀라운 열매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그리스도의 선물이 능력의 성령의 종이 되어서 더 놀라운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확신 있게 신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일에 동참해주신 여러분 또 우리 식구들 그대로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열매 맺고 그대로 쓰임 받는 나와 함께 일하는 주의 종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사를 전한 김종호 장로는 “세파에 지친 성도들을 위해 밤새워 기도하시던 목사님, 그 따뜻한 음성을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 지금도 곁에 계시는 듯한 목사님,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며 “목사님은 부산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셨다. 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온 열방을 가슴에 품고 세계 복음화에 진력하셨다”고 했다.
김 장로는 “목사님께서 떠나신 이 빈 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겠나. 이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나.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 가운데 바라본다”고 전했다.
◆ “죽음 앞에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 이항모 집사(사위)는 “이 슬픔의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성도님들께서 가족들과 함께 울어주시고 곁에 있어주셔서 가족 모두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고 있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정필도 목사님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하는 이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와 축복과 은혜를 말하지 않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집사는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영적 스승과 동역자를 이 세상에서 이별하는 이 시간에 인간적인 슬품과 아쉬움 있지만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치고 결승선을 통과해, 그리던 예수님 품에 안기신 정 목사님을 천국으로 환송하는 이 자리가 감사와 축복과 은혜가 넘치는 축제의 자리가 되기를 유가족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고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고 계신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특히 지난 21일 병원에서 故 정필도 목사의 임종을 지켜봤다는 그는 “당시 (정 목사의) 산소포화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수치들이 계속해서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었다”며 “그 고통 중에 힘들어하시던 아버님께서 어느 순간 갑자기 입에 대고 있던 산소마스크를 빼달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 집사는 “그리고 침대 등받이를 세워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신 아버님께서 ‘이제 나는 1시간 전의 정 목사가 아닙니다’라고 너무도 분명하게 선포를 하셨다”며 “그러고 나서는 병상에 앉으신 채로 두 팔과 두 다리로 온 힘을 다해 몸을 지탱하시면서 교회를 향해 설교하고 기도하시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호흡수가 정상인의 두 배로 높았고 코에도 아직 산소 공급용 튜브가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설교와 기도를 소리 내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집사는 “그래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사시고 기적을 베푸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그렇게 말씀을 다 마치고 나서는 다시 침대에 누으셨고, 그 뒤로 서너 시간 동안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주무시다 그렇게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날 저는 죄의 결과로 인한 죽음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 생생하게 목격하는 동시에 정말 예수님께서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이기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그 안에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실 때, 죽음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천국환송예배 후 고인의 장지인 경남 창원시의 창원공원묘원으로 이동해 하관예배를 드렸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故 정필도 목사는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리폼드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다.
1975년 부산 수영로교회를 개척해 36년 동안 목회한 뒤 원로목사가 됐다. 그 동안 수영로교회는 약 3만5천 명 성도의 지역 최대 교회로 성장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장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현 아신대) 재단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생전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정 목사는, 엎드리는 곳에 길이 있음을 믿으며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갔다고 한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부단히 훈련하며 “목사가 변하면 교회가 변한다”라는 신념을 목회현장에서 실천한 목회자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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