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일성은 '반성과 쇄신'이었다. 특히 대선 막판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2030청년과 여성에 쇄신의 초점을 맞췄다.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첫 회의를 국민을 향한 '90도 인사'로 시작한 민주당 비대위는 모두발언 첫머리도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 26세 박지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열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화상으로 참석한 박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은 닷새 전 선거 결과만 기억할 게 아니라 5년간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내로남불이라 불리며 누적된 행태를 더 크게 기억해야 한다"며 "47.8%라는 국민적 지지에 안도할 게 아니라 패배의 원인을 찾고, 47.8%가 무엇을 의미하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쇄신해야 하는 게 과제"라고 운을 뗐다.
아울러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와 2차 가해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한 뒤 "성폭력, 성비위, 권력형 성범죄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 근조화환 논란에 대해 "정치권의 온정주의를 뿌리뽑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성·청년 공천 확대도 역설했다.
청년 선대위원장이었던 34세 권지웅 비대위원도 "민주당은 적게 패배한 게 아니라 분명하게 패배했다. 아깝게 진 게 아니라 끝내 이기지 못했다"며 "1600만명의 국민에게 감사드리지만 그게 민주당이 적게 바뀌어도 되는 명분이, 방향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한끗차' 석패에 의미를 부여하던 민주당 내 일각의 낙관론에 맹성을 촉구한 셈이다.
나아가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논의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권 비대위원은 "평등법이 없는 기간 동안 우리는 고(故) 변희수 하사를 잃었고, 임차인들의 거주처인 기숙사와 임대주택이 행정에 의해 쉽게 거부되는 일을 자주 마주했다"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평등법 제정을 미루는 계기가 아니라 평등법 제정을 설득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환경·에너지 전문가인 37세 이소영 비대위원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젊고 유능한 사람이 대거 등장할 수 있게 혁신적 공천을 해야 한다"며 "송영길 전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전체 광역·기초의원의 30% 이상을 2030 청년으로 공천해 민주당이 2030당이라는 말을 듣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선거가 졌다고 유야무야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요 며칠 2030 청년은 물론이고 전 연령에서 10만명 가까운 분들이 민주당의 변화를 촉구하며 회초리를 들고 우리 당에 입당해줬다"며 "변화를 요구하는 이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 반드시 물어서 부족함을 채우겠다. 다시 기어서라도 국민에게 다가서겠다"고 힘을 실었다.
특히 "밉지만 그래도 민주당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준 2030 청년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더 깊이 성찰하고 더 확실히 변화하겠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청년 여러분의 뜨거운 분노를 새롭게 변화하는 민주당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전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청년과 여성에 초점을 맞춘 쇄신 드라이브를 건 것은 대선 패배의 근본적 원인이 당의 '노쇠화'와 청년·여성 지지층의 이반에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KBS·MBC·SBS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여성(58.0%)과 30대 여성(49.7%)이 이재명 후보로 쏠린 것은 대선 막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전략이 역풍을 맞은 반사이익으로 보이나, 민주당은 선거기간 내내 '세대 포위론'에 시달렸다.
여기에 박원순·오거돈·안희정 등 소속 광역단체장의 잇딴 성추문과 이를 대하는 당의 태도를 둘러싼 '2차 가해' 논란은 정권 초 확고한 지지를 보내왔던 여성 지지층을 막판까지 흔들리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선 기간 청년 인사들을 선대위에 긴급 수혈하는 데서 나아가 86 운동권 그룹이 포진한 민주당 주류에 대한 세대교체를 통해 체질개선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힘을 얻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2030 청년 기초선거 30% 공천을 관철하고,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를 비롯한 정치개혁안도 구체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기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밀어붙일 의사를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국민의힘과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형성하면 여성 지지층이 다시 결집하리라는 기대도 감지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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