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직신학회(이오갑 회장)가 최근 서울시 성북구 소재 덕수교회(김만준 목사) 본당에서 제63차 신진학자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동진 박사(University of St. Michael's College - Toronto)가 ‘21세기 한국교회의 방향을 위한 20세기 민중 신학과 에큐메니컬 운동 연구’, 조천권 박사(케이씨대학교)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황과 복음 - 자끄 엘륄의 신학적 관점에서’, 조현우 박사(한국침례신학대학교)가 ‘슬라보예 지젝의 유물론적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 중심성 고찰’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먼저, 김동진 박사는 “20세기의 에큐메니컬 선교적 교회론에서 민중 신학은 1970년 초기에 발생했다. 그때 이후로 그것은 현대적 한국의 개혁적 성향으로 사회적 민중운동과 함께 연계하면서 한국 사회에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며 “그 운동은 민중 그들 자신이 통치하는 그룹에 빼앗긴 그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얻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 당시에 한국 사회는 군사 독재자들에 통치를 당하던 시대였다. 독재적인 군사 정권 아래에서는 모든 시민이 행동, 생각, 여행에 제한을 받았고 미디어와 출판물 역시 통치를 받았다”며 “많은 보수주의적인 교회들이 통치하는 정부를 방어하고 지지하였을지라도 진보적인 교회들과 민중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들은 사회운동가들과 고난 겪는 학생들을 도왔고 민중 신학을 한국교회와 사회 안으로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은 사회의 힘없고 소외 받는 계층”이라며 “교회의 미션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좋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사랑하고 돌보았던 민중 오클로스(Ochlos)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개인적인 변화와 성스러운 예식과 함께, 교회의 자유와 평화의 미션은 전체 사회와 세계를 위하여 실행되어야 한다. 전체 구원을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으로 와야 한다. 반면에 부한 사람들과 통치하는 그룹은 변두리로 가야 한다. 그 전환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재창조하는 방법”이라며 “이 목적을 위하여 자유적인 교회나 보수적인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과 비기독교인들조차 연합해야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에 대하여 대화를 통하여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두 번제 발제를 맡은 조천권 박사는 “4차 산업혁명에서 예상되는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효율성의 확대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의 목적이 인간이 아닌 물질이고, 희망을 전하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물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은 인간이 아닌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는 고도한 기술문명의 시대적 정황에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물질과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기술을 신성화하여 우상으로 섬기는 현상으로 통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끄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은 평생 이십 여권의 신학 저술과 수많은 논문을 발표한 평신도 신학자였다. 또한 사십 여권의 저서를 통해 사회학적 분석연구를 진행한 역사학자, 사회학자, 법학자였다”며 “엘륄은 누구보다도 먼저 기술의 위험성을 통찰했고, 급변하는 기술 문명의 억압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모든 학문 기간을 통해 기술의 영향을 밝히고자 연구한 최초의 학자들 중의 하나였다”고 했다.
이어 “엘륄은 기술체계와 기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의 우상성을 드러내고 인간의 소외와 억압 상황을 주장했다”며 “엘륄이 설명했던 기술체계와 기술의 자율성은 효율성의 향상을 극대화하고자 자동화와 융합을 통해 형성되고 운영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세계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또 “엘륄은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인간의 부정적 상황은 하나님의 긍정적 섭리를 통한 변화의 계기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엘륄은 기술이 환경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기술체계에 사는 인간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기술체계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기술체계 밖의 초월적 존재이시며 인간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뿐이라는 것이 엘륄의 고백이었다”고 했다.
그는 “엘륄에게 하나님의 섭리는 곧 세상을 보존하시는 것이고, 세상을 보존하시는 활동이 구원활동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그리스도인이 매개하는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엘륄에 의하면 현대의 복음은 ‘세상의 실제상황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연구와 선포, 그리스도인의 재건, 인간의 고등문명 형성’을 위한 활동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어 “엘륄에 의하면 기술 중심성과 하나님의 중심성 사이의 끼인-존재인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한다는 것은 기술의 윤리를 부인(negation)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엘륄은 선을 선택하고 행하는 행위 자체가 기술체계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을 통해서 기술체계 내에서 선을 행하는 것의 불가능성, 하나의 개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성, 자율적 수행의 불가능성, 그리고 개인적 자유의 불가능성이 극복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고도의 기술문명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자각하고 보존할 새로운 복음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기술문명 속에 사는 인간과 세계를 보존하심으로 해방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엘륄의 복음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복음과 교회의 사역을 모색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현우 박사는 “지젝은 ‘문화 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 ‘MTV 철학자’ 등으로 불리며 (긍정적 호응과 부정적 비판 양 측면 모두에서) 상당한 반응을 일으켜 온 철학자”라며 “그의 유명세 외에도 기독교 신학이 유물론적 무신론자인 지젝의 사유를 고찰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기독교 밖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며 “그는 ‘기독교의 전복적 핵심은 오로지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으며, 역으로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경험을 거쳐야 한다’고 단언한다”고 했다.
이어 “지젝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즉, ‘이것은 라깡이 충동을 정의한 방식 그대로이다. 잃어버린 사물의 자리를 집요하게 반복해서 에두르기, 그래서 바로 그 불가능성을 표지하기.’이것은 대타자의 도구인 환상(Semblant)을 지속적으로 흔들면서 그 뒤에 있는 대타자의 결여를 드러내고자 하는 지젝의 죽음충동적 반복인 것”이라며 “이것은 마치 의식적인 층위에서 건축물은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을 넣기 위한 것이지만, 무의식의 층위에서 건물이란 그 안에 있는 공백을 표지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것이 지젝의 사유의 본질이어서 그의 사유는 언제나 이해에 포섭되는 것에 저항한다. 그러나 지젝의 사유를 다른 방식으로 구조화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설명A와 설명B 중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두 관점 사이의 균열과 틈새를 통해 지젝이 드러내고자 하는 실재의 일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그리고 바로 그 실재의 공백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죽음충동적 반복강박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젝의 독자들이 유념해야 할 사실은 여기에 나오는 지젝에 대한 규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보다는 지젝의 글을 반복적으로 읽어내려 가면서 그때마다 튀어나오는 어떤 잉여의 과잉이나 결여의 공백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라며 “바로 거기서 우리는 지젝이 탐닉하고 있는 그 충동에 동참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지젝을 바르게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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