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것 없어, 외피 바뀔 뿐
신학 등에서 보수 전통 견지해야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SNS에 쓴 ‘멸공’(滅共)은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다. 그 사전적 의미는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를 멸함’이다. 정 부회장이 쓴 이 단어와 이후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관련 논란에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게 왜 문제냐” 등의 취지로 지지하거나,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라며 비판하는 양상이다.
이에 본지는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와 13일 전화로 인터뷰를 갖고,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었다.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이 교수는 평소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논평해 왔으며, 저서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등이 있다. 아래는 일문일답.
-‘멸공’이 왜 논란이 됐다고 보나?
“어떤 의미 있는 ‘단어’에 반응하는 사람은 자신이 반응하는 강도만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과 관계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 있는 단어였던 것이라고 본다.”
-‘멸공’은 공산주의를 멸한다는 뜻인데, 그런 사상을 가진 이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인가?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상도 한 번 존재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거나 외피가 바뀔 뿐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도서 1:9). 새로운 뭔가가 나오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던 것이 변형된 형태로 다시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령 사회복지 같은 경우, 그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뭔가 과도하게 이슈화 되고 선악의 구도를 띠게 된 때에는 이미 이념이 투여된 것으로 봐야 한다.
공산주의의 경우도 그렇다. 누가 요즘 공산주의란 말을 쓰나. 공산주의보다는 사회주의가 완곡한 말이고, 사회주의보다는 공공성이란 표현이 현대적이고, 그렇게 이행된 이데올로기를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이념으로 장착하고 부각해, 그 이념에 상대화 된 진영을 매몰시키는 방식이 현대 사회에 팽배해 있다. 과거에 유행했던 이념들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 새 옷을 입고 부활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옷의 옷깃도 스쳐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멸공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뭐가 문제란 말인가. ”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도 있을까?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교회라는 곳은 목회자의 성향에 강한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 교회는 목사가 지닌 사상의 영향권 아래 있기 마련이다. 그가 복음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데 어떤 이념에 더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면, 말은 복음이라고 하지만 그 사상이 설교든 교육이든 그 모든 교회 활동에 녹아내리게 된다. 성도는 그 영향을 받고, 성도 사회에 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통이 중요한 것이다. 신학을 하든 목회를 하든 발전과 진보는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보수 전통을 잘 견지해야 발전과 진보도 건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교회도 일부 보인다.”
“본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
한편, 이번 ‘멸공’ 논란의 본질은 그 말 자체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스타그램이 애초 이 단어가 포함된 정용진 부회장의 게시물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최근 SNS에 “제가 생각하는 이 문제의 본질은 멸공 그 자체가 아니”라며 “멸공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인스타그램을 삭제해 버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의적이고도 과도한 제한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 제기이자 항의”라고 썼다.
그는 “어떤 분은 ‘일베놀이, 뿌리가 어디인지 보여준다’라고도 하고 어떤 분은 ‘암호를 풀었다’고도 하셨다”며 “번지수가 한참 틀리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표현의 자유보다는 ‘달파’, ‘멸공’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와 화들짝 놀라셨기 때문일까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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