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14-20)
요한의 사역을 인계한 예수님?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그 해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합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도 다가가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추하게 됩니다. 신자도 동일한 감회에 젖게 되지만 삶의 현실적 차원만 돌아봐선 안 될 것입니다. 올해 과연 신자답게 살았는지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고쳐나갈까 등을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면서 첫째로 행하신 일입니다. 주님이 가장 먼저 가르치셨다면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드러낸 것입니다. 신자가 올해의 삶을 하나님 뜻 안에서 마감하려면 주님이 말씀하신 그 목적대로 살았는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마가는 우선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 빌립의 아내를 불법적으로 취한 일을 두고 대놓고 비판 정죄하는 바람에 투옥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헤롯에게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체포되었기에 요한은 유대사회에서 의인으로 한창 크게 칭송을 듣고 있던 때입니다.
마태는 요한이 잡히기 전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후에 그와 동일한 내용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언뜻 요한의 사역이 중지되어선 안 되니까 주님이 이어 받아서 행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당신의 사역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메시지를 자세히 살피면 그 의미는 물론 그에 따른 결과도 서로 다릅니다.
주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들로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광야에서 외치는 사자를 먼저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가는 복음서 서두에 그 예언대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요한이 바로 그라고 밝혀놓았습니다.(막1:2-4) 요한의 메시지는 메시아가 올 때가 다가오니까 준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요한과 달리 때가 찼다고 확정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영어로 ‘fulfilled’라고 번역되었듯이 헬라어 ‘플레레오’는 “꽉 채우다, 확증, 성취, 완성, 만기가 되다”의 뜻입니다. 이미 완전히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기다릴 필요나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구원사역을 이루실 가장 적합한 상황과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구약시대는 완전히 문을 닫고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린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창세 때에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언약하신(창3:15) 바로 그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도 동일한 의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제 곧 올 것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오해하는데 실은 공간적 개념입니다. 영어 “at hand”로 번역된 헬라어 ‘엥기조’는 가까이 다가오다, 가까이 가져 가다의 뜻입니다. 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바로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곁에 이미 와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도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을 때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때가 찼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이미 와계시긴 하지만 아직 공사역을 시작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도 동일한 맥락으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예언했습니다.(말4:5,6) 이 예언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구절로 최종결론 격인데 구약의 메시지는 결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른다는 것 즉,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사건도 요한의 광야에서 외침과 이어지는 예수님의 공사역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바로 곁에 와있다면 주님의 다음 가르침은 당연히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회개라는 헬라어 메타노이어는 도덕적인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부를 완전히 새롭게 고쳐먹는 회심(回心)을 뜻합니다. 요한도 예수님처럼 회심을 뜻하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게 했습니다.(막1:5) 자복(自服)이란 윤리적 죄들을 실토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죄들을 짓고 있거나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선 메시아를 온전히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처럼 메시아를 준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미 곁에 와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안으로 회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주 간단한데 예수님 말씀대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 또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 내용도 아주 간단한데 마찬가지로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바로 곁에 와있다는 것이 복음 즉,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 한마디로 구약에 예언한 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는 일면식도 없어서 복음을 배운 바 없었고 십자가 처형과 부활 사건을 목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인간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하며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한다는 말을 듣고 천하의 이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구약율법의 전문가로 성전제사를 지내야만 거룩해진다는 계명이 골수에 박힌 그로선 예수를 믿는 신자를 박멸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 들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어떻게 이런 정반대의 극적인 선언을 할 수 있었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비췬 영광의 빛 때문에 삼 일간 봉사가 되어서 흑암 속에서 실질적인 죽음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다 생면부지의 이름 없는 예수 믿는 신자가 성령의 계시를 받고서 자기가 그들의 원수임에도 먼저 찾아와서 기도해주자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로선 예수가 그 신자들이 말하는 대로 사람의 살고죽음은 물론 부활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려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바로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삼년 간 자기 같은 천하 죄인들의 바로 곁에서 참 생명을 심어주셨다는 사실을, 말하자면 예수가 복음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절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 선포한 본문 말씀을 풀어쓰면 이렇게 됩니다. “성부와 성령과 성자인 내가 합의하여 태초부터 미리 정해 놓았던 인류 구원의 시간이 이미 되었다. 그래서 독생자로서 내가 너희 곁에 왔다. 내가 너희를 구원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자라고 스스로 자기증명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라고 말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아주 간단합니다. 심오한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계명이라면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엄연한 사실이자 진리를 생생하게 체험적으로 알았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요1:1)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주님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생명은 절대로 없고 죽음뿐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가장 먼저 복음인 당신을 믿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재산을 다 버려야 하는가?
이어서 주님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회개의 첫 열매로 갈릴리 어부 몇 사람을 택하여 당신을 따르라고 명했습니다. 택함 받은 자들도 주님의 그 초대의 말씀을 듣자마자 고기 잡던 그물과 배와 아비를 뒤에 버려두고 곧바로 쫓았습니다. 혹시라도 전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뜻으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우선 당시의 랍비의 교육은 동고동락하면서 스승의 모든 말과 행동까지 그대로 따라서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내고 당신을 따르게 한 것은 역사상 한 번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기간은 앞으로 삼 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복음을 정확히 가르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때가 차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주님으로선 삼위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구원에 관한 비밀의 경륜을 제자들로 최대한 깨우치게 하고 성경을 저작케 해서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너무나 어리석다 못해 맹인이나 다름없는 제자들에겐 삼 년은 아주 촉박한 기간입니다. 주님은 그들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속성과외 반을 구성해 삼년 간 당신과 함께 기거하면서 복음을 배우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생업을 잠시 뒤로 미루게 한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후 가버나움을 제자들 교육과 당신의 사역의 본거지로 삼아서 주로 베드로의 장모 집에서 기거했습니다. 젊은 남자 장정들만 최하 13명이 매일 먹고 활동하는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그들이 재산을 처분한 것이 아니었고 추종자들의 헌금도 받았으며 알다시피 가룟 유다가 그 돈궤를 맡아 관리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재산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 하나입니다. 본문 당시로선 제자들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직은 감도 못 잡았을 것입니다. 갈릴리 시골구석에서 생선만 잡고 있었는데 사람을 낚게 해준다니까 유대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올려주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과 칭찬을 받게 해주려나보다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곧바로 따른 까닭이 예수님에게서 성령의 권능이 강력하게 느껴져 거부할 수도 없었겠지만, 나중에 제자들끼리 계속 누가 더 높은지 다툰 것을 보면 세속적인 의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분의 일에 돈이 필요한 경우는 있지만 돈이 많아서 잘 이뤄지고 부족해서 이뤄지지 않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성도들더러 심지어 전임 사역자라도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 일에만 헌신하라고 명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더 많이 받는다는 법은 더더욱 없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따라 자기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기꺼이 반응만 하면 됩니다. 그 반응을 두고도 금액의 많고 적음으로 비교 평가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당신께서 당신만의 권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하게 이루실 뿐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명하지 않고 내가 너희로 그렇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를 따라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다투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자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권능을 입어서 죽기까지 주님만 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 군병으로 세상 앞에 당당히 서게 되었습니다. (계속)
2021/12/12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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