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백성에게 풀밭에 내리는 비처럼, 땅에 떨어지는 단비처럼 되게 해주십시오. 그가 다스리는 동안, 정의가 꽃을 피우게 해주시고,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가 넘치게 해 주십시오. (시편72:6-7)
솔로몬왕의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후세의 어떤 통치자도 이렇게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취임사를 한 적이 없다.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처럼 지혜와 영화를 누린 임금은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잠언서를 비롯해 3000 가지의 지혜의 글을 말하였고 아가서를 비롯한 1005편의 노래를 지었다.
솔로몬의 지혜에 관해서는 성경은 솔로몬의 재판을 예로 들고 있다. 두 여인이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고 죽은 아이는 상대방 여자의 아들이라고 우겼다. 솔로몬왕은 칼을 가져오게 한 후 "살아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는 명판결의 결과 산 아이의 친 어머니를 찾아주었다.
솔로몬왕의 지혜와 영화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브온의 꿈과 성전건축이라 하겠다.
그가 왕에 취임하자 처음 지방순례를 나선 것은 백성 1천명을 데리고 성막이 있는 기브온에서 번제를 드린 일이다. 그 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고 말씀 하셨을 때에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고 기도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지혜와 지식을 너에게 줄 뿐만 아니라, 부와 재물과 영화도 주겠다"고 축복한 것이다. 세상의 영화를 구하지 않고 종교적 윤리적 지혜를 구한 합당한 기도의 응답인 것이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민족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예루살렘에 레바논 백향목과 올리브나무로 성전을 지었다. 건설 노무자만 3만 명에, 자재운반공 7만 명, 채석공 8만 명, 공사감독관 3300명이 드는 역사적인 공사였다.
성전봉헌식도 장관이었다. 화목제사에 소 2천 마리와 양 12만 마리를 드렸다. 이 숫자는 봉헌식에 참석한 인원을 말해준다. 전 국민이 동참한 이 날 솔로몬왕은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들어서 펴고 기도했다.
"주께서 밤낮으로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주십시오, 그리고 주의 종인 나와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참으로 감격스럽고 위대한 기도였다. 훗날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시절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 봉헌기도대로 예루살렘성전을 향해 기도하여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4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북쪽의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남쪽의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통일한 강력한 왕국이었다.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 4만 칸과 군마 1만2천 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그마치 7백 명의 후궁과 3백 명의 첩을 둔 왕궁에 인근의 많은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배우려고 몰려 왔다.
아라비아에서 온 시바(Sheba)의 여왕은 "임금님의 지혜에 관한 소문은 믿지 못하였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들은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고 감탄하였다.
솔로몬의 지혜와 관련하여 성경의 궁금증이 하나있다. 그것은 그가 식물과 동물에 관한 지혜도 소유하였다는 대목이다.
솔로몬왕은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으로부터 벽에 붙어서 사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을 논 할 수 있었고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두고서도 가릴 것 없이 논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연계에 대한 그의 지식은 현대의 식물학이나 동물학자 수준이라는 말인가? 기독교와 유대교와 더불어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쓰고 있는 이슬람교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솔로몬이 동물들을 모으는 능력과 모든 창조물에 대해 부리는 능력을 가진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라 불리는 사도들(Al Lasul)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이 포함되어있고, 최후의 사도는 무함마드이며 그만이 특별한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다.
페르시아 필사본 중에 솔로몬의 영화에 대한 삽화가 있다. 17세기 페르시아 열왕기 (Persian Book of Kings)의 삽화인 '지혜와 부의 축복을 받은 솔로몬 왕'이라는 그림을 보자. 솔로몬의 옥좌 뒤에는 날개달린 3인의 천사가 있다. 짐승모양의 정령도 여섯이나 있는데 병풍 뒤에 둘, 옥좌 오른쪽에 넷이 있다.
정령(jinn 진)이란 코란에 등장하여 이슬람국가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요즈음에도 더러 출몰하여 소동이 있는 요정이요 귀신이다. 아라비아 동화 '요술램프'의 지니도 정령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슬람신화에서는 알라(Allah)는 빛으로 천사를 만들고,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불로 정령을 만들었다고 한다. 즉 천사와 정령은 인간보다 미리 창조된 태고의 종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갖고 있는 천사와 정령이 이 그림에서 솔로몬을 옹위하고 있다는 것은 이슬람에서 솔로몬을 사도로서 높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몬이 새와 짐승을 다스리는 장면도 있다. 병풍 뒤 푸른 하늘에는 공작새를 비롯한 길조들이 비상하고 있다. 옥좌 앞 초록색 카펫에는 사자와 코끼리, 원숭이, 기린, 사슴 등 각종 짐승이 솔로몬 왕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년에 스페인의 Moleiro사에서 보내온 자료 중에 페리시티의 책(The Book of Felicity)이 있다. 이 책은 1582년 술탄 무라드 3세가 그의 딸을 위해 만든 필사본으로서 12궁도를 설명한 지혜의 책이다. 이 책에는 오토만 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71매의 전면도판 삽화가 있다. 그중에 구약성경의 인물로는 다윗왕의 세밀화와 '선지자 솔로몬의 예언' The Divination of the Prophet Sulayman(Solomon) 이라는 삽화가 있다. 여기서 솔로몬은 지혜와 공평의 선지자로 표현되고 있다.
솔로몬 왕이 있는 건물의 정원에는 날개 달린 두 천사가 육각형의 왕관을 지키고 있다. 두 명의 뿔이 달린 정령은 솔로몬왕의 옥좌가 있는 방 입구의 아치형 기둥 앞에서 그를 지키고 있다. 지붕 위에는 공작새와 다른 새 두 마리를 그렸다. 이는 솔로몬이 동물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 자료에서와는 달리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는 솔로몬의 동식물을 다스리는 그림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솔로몬 궁전 옥좌 양편에는 돌사자상이 있고 계단 양쪽에도 12 마리의 사자상을 세워놓고 있어 다른 왕궁과는 다른 모습이다.
식물이나 동물에 관한 그의 지혜는 그가 식물학이나 동물학자 같은 학술적 지혜를 가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슬람 자료에서와 같이 창조물을 부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그의 지혜는 식물이나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 습성을 통해 도덕적 또는 종교적 교훈을 준 것일 뿐이다.
'까닭 없는 저주는 아무에게 미치지 아니하니 이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같고 제비가 날아가는 것과 같다. 말에게는 채찍, 나귀에게는 제갈, 미련한 사람의 등에는 매가 필요하다'(잠언26:2-3)
그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의리를 가르쳤고, 또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다. 기브온의 밤은 솔로몬과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의 밤이었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