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으로 물든 성탄절이지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따스한 겸손과 순결한 온유만큼은
생각하게 하소서.
사랑으로 미움을 밀어내고
약함으로 강함을 이겨내며
부활로 죽음을 초월하는 역설을
깨닫도록 하소서.
우리 속 영혼의 빈 곳간에
세상 속 안식의 말 구유에
아기 예수를 평화의 왕으로
영접하게 하소서.
아기 예수 닮은 평화의 사람으로
칠흑 어둠 밝힐 불씨를 가슴으로
묵시 지혜 담긴 성탄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이 인간 되신 역설을 음미하고 묵상하는 때입니다. 가장 누추한 말구유에 태어나신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역설 그 자체입니다. 성탄절은 약함으로 강함을, 부활로 죽음을,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역설의 지혜를 배우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인간 역사를 파멸로 이끄는 탐욕을 무력화시키는 강림절의 역설에 기대어 우리가 묵상한다면 기적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강림하신 일이 가장 큰 역설 아니겠습니까.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천상과 지상, 영원과 순간이 한 인격체 안에서 만나 인류 역사로 이어지는 단회적 사건을 함께 기념하고 기뻐하는 달이 12월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역설을 제하여 버리면 남는 게 없습니다. 역설이 사라진 신앙은 더는 신앙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 역설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입니다(고전 1:27). 해가 갈수록 성탄의 계절이 지닌 영적 의미는 퇴색하고 상업적 의미가 덧칠되는 것은 성탄절이 지닌 역설과 반전의 의미를 세상이 망각하기 때문이거나 한갓 신화로 여겨 거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탄절의 역설이 사라진 세상에는 물질주의와 성장주의를 동력 삼아 우리의 삶을 피폐케 하는 이상한 역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성탄의 역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소외된 곳, 절망과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반전에 있습니다. 그 반전과 역설 속에서 인간의 모든 삿된 욕정과 탐욕은 무너집니다. 아기 예수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이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폭력과 혼돈, 압제와 절망의 어둠이 드리운 시대 한복판에 태어나셨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인 갓난아기 예수는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에 다름 아닙니다. 그 아기가 세상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은 곧 반전이자 역설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으로 온 그 아기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는커녕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연약할 뿐만 아니라 볼품도 없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덮고, 부활로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 가르침의 화신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신 아기 예수는 인간 역사 속 가장 크고 귀한 선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던지는 헌신과 희생으로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사회적 약자를 돌보십니다. 그들을 치유하고 온전케 하고 하나님 나라 비전 메이커로 살아가도록 북돋워주십니다. 땅의 비루한 욕정에 붙들려 사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가르치십니다. 그 땅의 가치와 질서 속에 깃든 악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힘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현실을 하늘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 하늘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말입니다.
산에는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사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생명의 강인함을 봅니다. 그 자체가 신비입니다. 나무는 뿌리에서 나오는 산성용액으로 바위를 녹여 뿌리를 뻗어간다 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뚫는 겁니다. 처마 밑에 놓아두었던 댓돌이 빗방울에 움푹 패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포근한 대지가 날카로운 칼을 품고 녹슬게 하여 사그라트리는 것도 그런 진리를 깨우치게 합니다. 딱딱하고 강한 것이 무르고 약한 것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생명 세계는 그 반대입니다. 생명에 가까운 것일수록 부드럽습니다. 부드럽지만 무력하지는 않습니다. 작고 연약한 것 앞에 다가갈 때 우리 영혼은 맑아집니다. 천국 주권자로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가장 연약한 아기로, 가장 비천한 종으로 오신 것이 성탄절의 비밀이고 신비입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다가오는 성탄절을 가장 의미있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누군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합니다. 성탄절의 유일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장 고귀한 선물인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교회는 세상에 선물이 되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위로부터 큰 선물을 그저 받았으니 자신에게 속한 것들을 그저 나눠주는 그런 사람이 우리 가운데에 있다면 세상은 한결 따뜻해지고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복된 선물이 되는 성탄을 기대하며 소망합시다.
이상명(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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