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구속에 또 실패했다. 윗선 수사에 차질을 빚을 거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보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수처가 손 전 정책관에 대해 청구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 부장판사는 이날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 10월26일 손 전 정책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두 차례의 소환조사와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옛 수사정보정책관실) 등 보강수사를 벌여온 끝에 지난달 30일 구속영장 재청구라는 강수를 뒀으나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공수처는 처음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전 검찰총장)를 피의자로 놓고 수사했다. 그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검찰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범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의 지시나 승인, 또는 묵인이 있었을 거로 봤다. 손 전 정책관은 그의 지휘를 받아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에게 지시했을 거로 의심했다.
그러나 수사는 손 전 정책관 단계에서부터 막혔다.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와 태블릿PC 등을 확보했으나 잠금해제를 하지 못해 유의미한 단서는 찾아내지 못했다. 여기에다가 소환일정 조율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사흘 간격으로 청구했다가 잇따라 기각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1차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논평을 통해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방어권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하는 등 법조계의 비판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는 손 전 정책관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소환조사와 추가 압수수색 등을 통해 그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람이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검사들이라는 것까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고발장 작성자는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전 정책관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하려면 실제 그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지시로 '누가' 고발장을 작성했는지를 찾아내야 하는데 아직 그 퍼즐은 맞춰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을 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대통령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공수처에는 부담이다. 결정적 단서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대선후보를 소환한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 동력이 떨어진 점에 비춰볼 때 공수처가 손 전 정책관을 우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관해 수사를 이어가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경우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되거나, 아니면 무혐의로 결론 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특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5일 공수처에 고발사주 의혹을 재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이 작성·전달된 후 다시 검찰에 접수돼 처리되는 전 과정을 통제할 유일한 사람은 누가봐도 윤석열 총장밖에 없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연루된 대장동 사건을 특검에 넘기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 전 총장의 고발사주 의혹도 함께 특검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민주당의 전략적 고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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