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묵상 책갈피] 코너를 통해 신앙도서에서 은혜롭고 감명 깊은 내용을 선택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맥락 가운데 놓여 있다. 그것은 몇 년 전 모세가 그 땅을 탐지해 오도록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던 것처럼,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내는 여호수아 의 이야기와 함게 얽혀 있다.
여호수아가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낸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38년 전 모세가 열두 명의 침입자를 보냈을 때 단지 두 명의 정탐꾼만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신실한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호수아가 그중의 한 사람이요, 그의 친구 갈렙이 또 나머지였다.
이 경우 여호수아는 앞에서 당했던 것과 같은 재난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선택하였으며 또한 불신앙으로 가득 찬 보고보다는 신앙의 보고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은 직접적으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여호수아가 말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전진하자고 하면서 정탐꾼들을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민13:1,2). 이와 같이 하나님은 동일하게 여호수아에게도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정탐꾼들은 여리고로 가서 며칠 후 취하게 될 공격을 준비하기 위하여 성을 탐지하였다.
만일 정탐꾼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순종함으로 보내졌다면 우리는 모든 이유를 다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정보만 수집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라합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여리고 점령할 때 라합과 그녀의 가족을 구하기 위한 사전 계획이었다.
이 상황은 요한복음 4장 4절과 유사하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고 말한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 갈릴리에 이르는 유일한 도로라는 뜻이 아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다른 길을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성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셨다. 동일한 방법으로 두 정탐꾼은 라합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리고로 보내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때 결과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하나님은 라합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셔서 그녀를 믿음으로 인도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서 그녀의 믿음을 확인하게 하시고 실제로 구원케 하신다. 이 위대한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가 아닌 최초의 인물이 바로 여인이며 첫 번째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라는 점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J.M. 보이스 「여호수아 우리는 주님을 섬기리라」 연합 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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