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교회(담임 최이우 목사)에서 지난 6일 ‘코로나 너머, 교회학교 교육’을 주제로 교회학교 교사대학을 개최했다. 이날 손성현 목사(창천감리교회 교육목사)와 이선진 목사(안성제일교회 담임목사)가 각각 ‘다리를 건너, 얼굴을 찾아’, ‘부름 받은 신실한 교사가 되십시오*(계17:14)’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전했다.
이선진 목사는 교회 학교 교사의 사명에 관해 전하며 “교회학교 교사가 첫 번째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관심이 있어서 지원한 분도 있고, 절 수 없이 하게 됐다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관심을 주신 것도, 누군가를 통해서 하게 된 것도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이라며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꼭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부름받은 교사의 사명에 관해 “부름받은 그 주님을 말씀으로 체득하여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라는 책은 온갖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이 계속 자생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낸 소망의 생활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시 로마는 성적으로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무지했고, 종과 주인이 철저히 나눠진 삶을 살 때였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종과 주인이 식탁을 같이하고, 자기의 재산을 공유하고, 소망을 부여잡고 성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절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책에선 그것을 ‘주님의 인내의 성품’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소망을 붙잡고 인내하시며 걸어간 그 길 위에 제자들이 세워졌다. 부름 받은 제자들이 그 인내를 따라 소망을 품고, 계속 그 길을 삶으로 보여주었을 때 인내가 발효되어서 초기 기독교의 성장이 되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부활의 기쁨으로 소망으로 즐겁게 살아내니까, 저들의 공동체는 뭔가 다르다 인정하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교회학교 교사의 사명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인내하며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하고 격려해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역할이 교회학교 교사에 있다. 요즘 세대에 대해 쉽게 결론 내지 말자. 격동기를 겪는 아이들이 그 시대를 넘었을 때, 우리와 같은 믿음의 반열에 들어서기를 소망하면서 계속해서 복음 안에서 믿어주고 응원하고 함께 인내해 나갈 때 우리 아이들이 가장 안전하고 건강하게 세워질 줄로 확신한다“고 했다.
이어 “교사로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무기가 성경, 말씀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나눠주려고 하는가? 성경 안에 말씀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말씀은 지금 우리의 삶을 두드리는 주님의 메시지이고 복음이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보여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사들이 먼저 말씀 안에서 고민하고 내 것으로 고백하며 나눌 때 그 말씀은 힘이 없지 않다. 매일 말씀을 듣는데 아이들이 왜 변화되지 않는가? 앵무새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되고 있다. 인내를 가지고 여러분의 고백을 살아있는 눈빛으로 전하고 삶으로 전한다면 말씀의 능력이 반드시 일어날 줄 믿는다. 주님께 부름 받았다면, 먼저 주님께 공급받고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는 교사들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선진 목사는 “어떻게 말씀을 삶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칭찬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믿어주시길 바란다. 무조건 칭찬하란 말이 아니다.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고 나서 해주는 조언, 혼냄,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스펀지처럼 들어간다. 그러나 관계없는 가르침은 반드시 튕겨 나간다. 학교에서도 무조건 혼내는 선생님과 무섭지만 존경하게 되는 호랑이 선생님이 있다. 호랑이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아이들과 관계하고, 아이들이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언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그 차이를 안다. 라떼는 이라 말하지 말고 먼저 삶으로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제 아이가 사춘기 때 잠이 많았는데, 토요일이면 깨우지 않아도 아침부터 교회에 나가 찬양팀 연습을 하고, 주일에도 종일 교회에 있었다. 도대체 잠이 많은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눈을 번쩍 떠서 교회에 갈 수 있었을까? 교회 선생님이 ‘너 정말 대단해’, ‘은혜 받았어’ 이런 칭찬을 계속한 것이다. 집에서는 대단한 아이가 아닌데 교회에서는 대단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저는 저희 교회학교 아이들과 만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했다. 교회만 오면 산만하다는 소리를 들어 교회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였는데, 목사님, 선생님이 하이파이브를 해주니 그것 하나만으로 교회에 오는 걸음이 넘쳐나게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이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교사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절대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 저는 이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 시기와 시기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기로 결단했다. 그냥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아이들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니 교사의 역할은 믿어주고 응원하는 것이다. 교사가 환대해주고 쓰다듬어 줄 때 아이들은 교회로만 가면 칭찬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저는 그런 꿈이 있다. 아이들이 교회에 어쩔 수 없이 오는 게 아니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공부하느라 힘들었는데, 그래도 교회에 가면 선생님들의 환한 웃음이 있고,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있고, 힘들다고 얘기해도 염려하지 말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기 원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방황하더라도 반드시 그 방황의 끝에 선생님들, 교회를 기억하며 이곳으로 걸어올 줄로 믿는다”고 했다.
이선진 목사는 “교회는 가장 어두울 때 빛을 나누는 곳이다. 그 빛을 나눌 때 아이들은 그 복음을 붙잡고 빛으로 등불로 세워질 줄 믿는다. 아이들이 방황하는 세대, 문제 있는 세대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문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하고 대적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긴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뒤에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는 것이다. 그 부르심을 받은 교사들이 그 부르심 안에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믿어주고 응원할 때 우리 아이들이 여러분을 통해 사단을 이기게 될 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만 기억하라. 우리 주님이 승리되셨다면 우리는 승리한다. 이 복음을 제 확실한 믿음으로 간직하고 산다. 세상을 사는 동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고 때론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읽는다. 19장 11절에 하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 열린 문을 통해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 복음이 우리에게 확신으로 다가온다. 이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교사들을 통해 아이들도 흔들리지 않고 살게 될 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선배 목사님께 들은 팔레스타인의 목동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공동우리를 만들고, 양과 염소를 1년 동안 돌볼 목동을 선발한다. 목동을 선발할 때 그의 몸에 상처가 있는지를 본다고 한다. 이 상처는 목동이 가축을 지키기 위해 맹수들과 맞서 싸운 흔적이다. 흔적이 많은 목동은 자기의 목숨을 내던지고 양을 지킨 자이고, 없는 사람은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도망간 사람이라고 한다. 몸에 가장 상처가 많은 목동을 뽑아 자기의 양과 염소를 맡긴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지닌 분은 누구일까. 우리 주님이다. 그의 손, 발, 옆구리, 머리, 온몸 그 어느 곳도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주님은 나는 선한목자라 명령하시면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실만한 분이라면 그 주님께 우리를 맡길만하지 않은가. 우리의 모든 염려, 걱정을 맡길 때 오늘도 부름 받은 교사의 사명을 허락해주실 줄 믿는다”고 했다.
이어 “우리 눈으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있길 소망한다. ‘아이들이 문제다’, ‘염려다’, ‘걱정이다’가 아니라 승리하신 주님께서 그들 또한 이끌어주실 것을 맡기고, 응원하고 믿어주고 격려하며 그들의 승리를 먼저 선포할 수 있는 교사들이 되길 소망한다. 우리 눈으로 주님의 승리하신 그 영광을 본다면 우리는 염려하거나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고 걸어가게 될 줄 믿는다. 선생님을 앞을 보여주는 자가 아니라 걷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자들이다. 우리가 걸어야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따라 걷게 될줄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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