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차별금지법’ 문제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비공개 참모 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일간지가 보도하면서부터다.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가 “문 대통령은 성소수자, 동성애 등 진보적 가치와 직결된 인권 이슈에 관심이 각별하다”며 “정권이 끝나기 전에 풀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의지를 확인이라도 한 것일까. 제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 및 평등법안을 대표 발의한 4명의 국회의원도 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법안의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12월 9일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 해당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인다.
교계의 움직임은 그동안은 정중동(靜中動)에 가까웠다. 여당부터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긁어 부스럼을 낼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여서 교계도 직접적인 대응은 피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런 의중을 드러냈다면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입법 논의를 서두르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당 핵심 관계자가 국회 법사위가 여야 간사 간에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출되는 5일 이후에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은 사항”이라고 밝혔다는 점에 교계는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차별금지법의 포문을 연 것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다. 이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의 핵심은 ‘성별’을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정의했고, 고용 등 4개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 데 있다.
교계는 일제히 강하게 반발했다. 교계 연합기관과 교단들은 차별금지의 사유로 열거한 것 중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된 ‘성별’을 비롯해, 동성애 등을 포함하는 ‘성적지향’과, 젠더 개념이 반영된 ‘성별정체성’ 등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에 첫 발의된 이후 14년 동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만 정의당 장 의원을 비롯, 민주당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 등이 잇따라 유사한 법안을 발의하고, 이어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명을 넘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정식 당론으로 채택된 바 없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치지 않던 여당의 태도에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 안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했다. 아직까지는 논의를 재개하겠다는 수준이지만 정기국회 안에 논의를 공론화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여당의 의지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선 여당인 민주당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논의 시점을 구체적으로 처음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껏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터져나 온 반대의 목소리를 의식해 신중론으로 일관하던 기존 태도에서 “논의해 보자”는 쪽으로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 4명이 함께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도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은 정치권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며 코로나 확산으로 자제해온 반대 가두시위를 비롯해 공청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대의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그동안 차별금지법이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게 된 원인의 화살을 보수 기독교계에 돌려 왔다.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에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데 일부 극렬 보수 기독교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정당하지 않고, 팩트도 아니다.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성 소수자 등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고 억압하려 하거나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행위의 발로라 함이 맞다.
차별금지법안과 평등법안에 담긴 평등이 온 인류가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라는 점을 누군들 부정하겠는가. 문제는 그 평등의 잣대를 국가가 들고 사적 영역에까지 개입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하게 된다는 데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해 감정적 혐오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이성적 비판과 정당한 논의까지 국가가 막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다. 아무리 국가라도 개인이 가지는 자유와 권리까지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이에 대해 “차별금지법은 평등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사상이나 견해 등에 대해 긍정적 평가만 허용하고 부정적 평가는 매우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며 “이는 개인의 인격 발현과 인간의 존엄성 실현을 방해하고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교계가 이제까지 발의된 차별금지법안 및 평등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성경 말씀에 배치되기 때문이지만 인간의 자유와 권리까지 함부로 침해하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 법을 무조건 밀어붙이려 하기 전에 차별과 혐오를 금지한다면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역(逆)으로 조장하는 법이 왜 필요한지부터 답해야 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