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이 평양을 거룩한 도성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사역이 있었다. 첫째는 영혼을 구하는 교회 설립 사역과 둘째는 육신을 치유하는 의료 사역을 위한 병원과 셋째는 문맹에서 문명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장인 학교 설립이었다. 그로 인해 음란과 폭력이 난무했던 곳이 생명과 소망의 도성으로 변화되어갔다.
놀라운 점은 그 기간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 사역에 두 명의 초기 선교사가 있었다. 사무엘 마펫이 장로교 선교사로서 최초로 평양을 방문한 때가 1890년이었고, 감리교 선교사로는 윌리엄 제임스 홀이 1892년에 평양을 최초로 방문 개척함으로 이북 지방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평양의 신속한 복음화에는 그만큼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랐다.
이당시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기에 그러한 사역의 기독교화(Christianization)의 환경 구축과 문명화(Civilization) 사역은 평양의 복음화에 토대가 되었다. 이는 놀라운 진행과 결실이었다. 그로인하여 평양이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먼저 장로교 계통에서는 사무엘 마펫에 의해 평양 중심의 장대제 언덕에 장대현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크게 부흥되자, 선교사들이 사역의 범위가 크게 되어 평양 도성 서문밖 일대에 약 60만 평을 확보하여 그 곳에 '서문밖교회'와 장로회의 '캐롤라인기념병원' 과 베어드 선교사의 주도하에 '숭의여학교'와 '숭실학교'와 '숭실전문대학'을 건립하였고 선교사들의 거주지로 삼았다. 그 규모가 컸음으로 평양 주민들은 그곳을 서양 사람들이 활동하는 곳이라 하여 "양촌"이라고 불렀다.
이에 비해 감리교에서는 지금의 류경호텔이 있는 남산현 지역에 먼저 '남산현교회'를 개척했고 그 중심으로 하여 많은 교육 기관과 병원을 세웠다. 후에 미국 감리교 측에서 홀 의사 선교사가 세운 병원과 '정진학교', '맹인학교', '남자성경학원', '광성학교', '여선교사 숙소',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 선교사 사택 등을 그 지역에 걸립했다.
평양의 선교 전진 기지와 환경 구축은 장로교에서는 마펫과 베어드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감리교에서는 1893년 윌리엄 제임스 홀 의사 선교사 부부에 의해 교회와 학교와 병원이 설립되었다. 그러한 사역과 기관들의 계승하여 더욱 확장하고 발전시킨 선교사는 노블 선교사 부부로서, 1896년에 평양으로 발령받아 홀 선교사 부부에 이어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평양에 감리교 선교 기지가 형성되었다.
평양에서 그곳 주민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기관은 바로 병원이었다. 이 병원은 평양에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인 홀 선교사가 전염병으로 순직하자, 그의 부인 셔워드 홀이 남편을 기념하는 근대식 병원을 1897년에 크게 건립하였고 그후 폴웰 남자 의사 선교사가 합류하여 보건 위생 사역이 크게 확장되자, 1931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 측에서는 연합하여 병원을 운영하기로 함으로 평양 서문안에 류경골에 "평양연합기독병원"이 세워져 의료 혜택을 평양 주민들과 그 일대의 사람들에게 주었다.
감리교 노블 선교사 부부는 최초에 소녀 매일학교를 발전시켜 '정진여자보통학교'로 발전시켰으며 1927년에는 고등학교로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고, 그 학교에는 기숙사 시설이 있음으로 이북 지역의 학생들도 유학하여 학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초기에 한옥 주택을 구입하여 그곳에서 주거하면서 사역을 하다가 점처 여러 선교사들이 증가하자, 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주거 지역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서양식 삶에 맞는 주택을 건축하여 서구식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에게는 한옥 방이 매우 작아 발을 뻗으면 다을 정도였기에 침대나 책상을 놓을 수가 없었다. 특히 부엌은 부뚜막으로 음식을 하기 위해 허리와 다리를 구부려야했다. 또 조선식 집들은 창문이 없거나 작기에 환기가 잘 안되고 햋빛이 들지 않아 특히 결핵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 당시 평양에는 우물도 없어서 대동강물을 물장사들이 일일이 퍼다 주는 것을 먹었으므로 수인성 전염병이 퍼지면 많은 사람들이 전염되었고, 특히 서양 선교사들에게는 이질병이 내성이 약하여 여러 선교사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의료 선교사들에 의한 위생 보건 위생 교육과 치료 활동으로 평양과 이북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으며 서구식 교육 사역은 그곳 주민들에게 근대화된 문명의 삶으로 인도되었다.
강석진 목사(「근현대사로 읽는 북한교회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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